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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여행이 가지는 여러가지 의미서평 2022. 9. 19. 21:03
1.
「알쓸신잡」으로 알게 된 김영하 작가님이 많은 여행을 다니며 그에 대해 쓴 글이다. 언제~ 어느 나라를 가서~ 뭘 먹고~ 그런 생생한 현장을 담은 여행기는 아니다. 커피를 오랫동안 다양하게 마셔본 사람이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여행 그 자체에 대해 넓고 깊게 끌어낸 글이었다.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신선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여행이라는 위기 속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만 집중하게 되어 정신적 평온함을 누리게 된다거나, 꼭 물리적으로 내가 내 발로 걸은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것, 복잡한 개인의 감정상태가 글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여행 후 세계와 우리를 글로 연결짓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일반적으로 고정된 삶의 터전에서 때때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 계속해서 바뀌는 즉 삶 자체가 여행인 사람들에게는 여행이 무엇인지 등. 여행이란 비행기를 타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라는 나의 생각을 흔들어 준 글.
64p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함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데이비드 실즈「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김명남 옮김 | 책세상 87p
109p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117p
내 말로 바뎌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에두아르 굴리상(작가)는 노년에 이스터섬에 대한 책을 한 권 쓰기로 했으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자 아내 실비 세마를 대신 보낸다. 그리고 그 아내가 찍어온 사진과 메모, 인상, 동영상 등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113p)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 진짜 여행이 아니라는 말, 이 책에서 전했듯 과거에는 하인을 시켜 금강산 꼭대기에 오르게 하거나 에두아르 굴리상이 보인 다양한 여행법들. TV로 보는 것도 여행일까? 여행이란 무엇일까. 나아가 저자는 독서 또한 여행이라고 말했다.
155p
여행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챈다. …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
※실뱅 테송 「여행의 기쁨」 어크로스 2016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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