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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Jane Austen]서평 2022. 9. 26. 21:46
1.
「오만과 편견」이 ‘BBC선정 꼭 읽어야 할 책’, ‘SAT선정 도서’ 등 상당히 고평가 되어있음에 의문이 들었다. 훌륭한 책이기는 하다만 내가 문학적 통찰력이 부족해서일까 전율·깨달음·여운과 같은 것들이 거의 없었고, 실제로 이 책이 지닌 문학적 가치보다 과하게 평가되어 있지는 않은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인 오스틴이 구사하는 재현의 기술은 셰익스피어에 비견할 만하다”는 헤럴드 볼룸의 말과 영국BBC의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제인 오스틴이 2위를 차지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고평가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 이 책이 쓰여질 당시(19세기) 「오만과 편견」만큼 풍부하고, 예리하고, 세밀하며 생동감과 깊이가 있는 책들이 얼마 없었기에 두드려져 보였던 것이고 그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글솜씨는 무척 뛰어나며 이 정도의 글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현대에도 몇 안됨을 인정하지만-「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인오스틴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당장 전화하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의 세밀함과 생동감, 즉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그녀지만-그 시대(19세기) 이래로 ‘글’에 대한 연구와 교육의 발전과 축적이 이루어진 오늘날에 그에 비견할 만한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상향평준화된 글쓰기 능력에 맞는 평가가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는 한다.
덧붙여서, 좋은 글에 대한 관점이 달라서일수도 있다. 이를테면 「오만과 편견」에서 한 인물의 대사가 한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말들이 적잖이 등장하는데,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면 한 인물의 대사가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글쓰기를 추천하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긴 대사와 글을 찾기도 힘들다. 이러한 경향은 자극적인 매체들이 등장함에 따라 ‘집중’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2.
왜 제목이 「오만과 편견」일까 생각해 봤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철학 서적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내가 그랬다. 사랑 이야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는 이 책의 최종 정착지와도 같은 엘리자베스 베넷과 피츠윌리엄 다아시의 사랑·결혼이 성사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초반부 다아시의 오만함과 이에 대한 엘리자벳의 편견 때문에 이 둘은 결코 가까워 질 수 없었다. 그러나 첫 번재 다아시의 청혼 이후 엘리자벳의(편견이 듬뿍 섞인) 사유와 함께 그의 오만함이 서서히 누그러들고, 그의 노력과 몇 가지 사실들로 그녀의 편견 역시 차츰 진실을 향해가며 사랑이 성사된다.
오만과 편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개개인은 그것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들을 인식하고 뉘우쳐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덧붙여서, 초반부에 오만과 허영에 대한 메리의 견해가 무척 인상 깊었다(31p).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여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어있거든”
어떠한 서평에서 「오만과 편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과 결혼의 문제에서 외적 조건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규범과 개인의 성품과 선택을 중시하는 새로운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충돌, 그 사이에 낀 여성들의 곤경으로 나타나는 시대적 변화로 인해 작중 인물의 됨됨이가 계층과는 무관함을 드러낸다’. 이렇게 보면 예리한 풍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신데렐라적 플롯’에서 쉽게 전제할 수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3.
끝으로 오만과 편견 그리고 허영에 대해 성찰해 보았던 내용을 기록한다. 오만과 편견, 허영 모두 다 경험했고 모든 순간에 작용한다. 남의 시선을 주된 관심으로 삼고 오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만도 내게 있지마는 허영심이 훨씬 더 자주, 강하게 작용함을 오만과 허영의 구별된 설명을 통해 알았다. 나에게만 있는 줄 알고 괴로워 했으나 책에서 일반적이라 하니 약간의 안도와 위로가 되기도한다.
무엇보다 편견이라는 것이 남들보다 나를 괴롭게 한다. 다아시가 어떻게 리지를 사랑할지 고민하는 것조차도 리지는 그가 어떻게 자신을 괴롭힐지 고민하는 모습으로 해석했다. 편견은 진실을 가리고 오해와 마찰을 일으킨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아주 작은 종양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냥 두었다가는 언젠가 암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31p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여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어있거든”
→ 평소 내가 오만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자주 느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미워지고 우울해 지고는 하는데 오만이 일반적이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허영과 오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을 기억해 볼 때 작품을 해석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았다.38p 3번째 문단
“메리는 재능도 소양도 없었다...”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 메리에 대해 표현하는 부분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의 단점(메리는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못생겼음을, 나는 키가 작거나 외모에 대한 부분)을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그러고자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 부자연스럽다. 배울 때 기술의 터득 또는 향상이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로인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봐 주었으면 한다는 데 주목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생각해 보기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비전과 앞으로의 계획들의 중심에 허영심이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85p
“맞았어요, 허영은 진짜결점입니다. 그러나 오만은…진정으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면 늘 그것을 잘 통제하기 마련이고, 그건 오만이라기보다 자긍심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다아시-
→ 오만을 자긍심으로 여길 수 있을까? 너무나 다른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330p
“결국 진짜 행복의 출발점으로 다른 시기를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소망과 희망이 이루어질 그 시점을 정하고, 다시 그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을 누림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또 다른 실망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요즈음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공통된 성격인 것 같아서-매우 정확히 정리된 것 같아-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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