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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5 | 예술의 도시 파리일상 2022. 7. 15. 00:21
: 파리 2일차.
일기가 조금 밀려서 한꺼번에 쓰려고 한다. 인스타그램을 핸드폰에서 지우고 난 후에 깨달은 사실인데 잘 나온 사진보다 기록의 의미로서 사진을 찍는게 더 가치있다. 잘나오던 못나오던 일단 순간을 찍고,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엘범을 돌려보면 사진만큼 기억을 잘 되살려주는 것도 없다. 물론 재미도 있고. 근데 글도 그만큼 중요하다. 사진이 만든 공백을 꼼꼼히 채워주는 것이다. '사진보고 나중에 4일치 일기 몰아써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하루만 지나도 과장 조금 보태 사진으로 기록된 순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느끼고 떠오른 생각들이 있는데 없어져버려 여행중에 남는건 사진과 그에 딸린 몇안되는 기억뿐이다. 그래서 글 또한 매우 중요하다.
다시 파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루브르 박물관이 예약된 줄 알고 다들 일찍 일어났는데 알고보니 다음날에 예약되었었다. 피곤한 몸과 머리를 추스르고 루브르 박물관 앞 공원을 둘러보고 오르세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햇빛이 얼마나 맹렬한지 햇빛이 닿는 어디든 달구어진 프라이펜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느낌이 들었다. 근데 무슨 생각인지 썬크림은 바르지 않았다. 덕분에 새까맣게 탔고, 나는 타면 갈색이 아니라 검정색에 가까워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카맣게 탄 얼굴이 새로 산 안경하고 잘 어울려서 오히려 좋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 하나같이 다 그림같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공원을 보면 유럽 사람들이 행동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느낄수 있다. 맨발로 단체줄넘기를 하거나, 조깅하거나, 썬텐을 하거나 특히 목줄을 푼 개들이 자유로히 뛰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개는 한국에도 많지만 온 몸의 근육과 관절을 균형있게 잘 분배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움직인다는걸 처음 보았다. 목줄을 풀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개들도 젠틀한건지 주인이 아닌 사람은 멀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쁘다. 넓은 잔디공원을 뛰노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침은 누나 의견대로 센드위치와 빵을 들고 공원에서 해결했다. 공원이 무척 아름답다. 햇볕이 드는 자리는 부담스럽고 그늘진 자리는 서늘하다. 햇볕을 마음껏 쬐는 백인들과 흑인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볕이 아프지는 않은가..? 파리가 좁다는 이모 말이 납득이 갔다. 루브르로 들어가서 조금 걸으니 오르세가 있었고, 오벨리스크가 보였고, 에펠탑에 센 강도 보였다. 2시간정도 걸으니 그렇게 다 보고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였을까. 물론 그렇게 말고도 다른 볼거리들도 많겠지만 손에 꼽히는 것들이 인근에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프랑스에 자랑거리라 할 것들이 이미 글로벌하게 유명한 것들이라 뭐든 다 그런걸까.
루브르 박물관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오르세 미술관이 나오고 30분 정도 걸으면 에펠탑과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실제로 파리가 서울보다 작다고 하니 얼마나 볼게 많은지. 밥-카페가 아니라 할 수 있는게 많아서 너무나도 부러웠다. 지드래곤이 좋아한다는 미슐랭 우동 맛집 ' 사누키야(SANUKIYA) 우동' 거의 오픈시간에 맞춰 갔는데 30분이나 기다렸다. 그러나 그리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우동보다는 우엉밥이 더 맛있었다는 아이러니. 다음에 파리에 간다면 꼭 다시 들려서 밥종류를 먹어볼테다. 오르세에는 정말 책이나 교과서에서나 보았을 법한 것들이 벽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내가 두 눈으로 보고있는게 실제가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명망높은 그림들이 벽에 끝도없이 늘어져있었다. 근데 재미있는건 그렇게 귀중한 작품이면서 유리판 하나 없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줄 하나가 그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 전부라는 것이다. 플레시만 터트리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니. 우리나라에 왔다면 정말 귀한 대접 받았을 작품들이 좋게말해 친근하게 다가오니 가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연예인을 눈앞에서 가까이,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것 같아 짜릿함이 발끝에서부터 어깨까지 타고 올라왔다.
오르세 벽에 끝도없이 걸린 작품들이 죄다 이런것들이다. 우리나라에 오면 좀 더 귀한 대접 받을텐데... 자화상... 정말 붓으로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리서 보기도 하고. 콧등,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배경과 인물의 경계선을 따라가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색감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AI가 그림을 그린다고 한들 인간이 가진 예술성의 강력함과 초월적인 창조성을 가늠해볼수있도록 해준다. 처음에는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었지만 그것도 잠깐, 하염없이 늘어진 귀중한 작품들에 그만 지치고 말았다. 한두점 걸려있으면 모를까 하나같이 위대한 것들이다보니 오히려 스쳐지나가듯 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원래 무한리필 음식점보다 아쉬울만큼 나오는 음식에 더 집중하게 되는 법이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 작품들이 끝도없이 늘어섰다. 오전까지만 해도 이미 20km 가까이 걸은 상황. 유럽은 걷기의 연속이다. 도시가 여러의미로 자유분방해(지상 교통이 체계화되어있지 못하다. 인구 밀도도 높고 도로가 좁으며 인도와의 구분이 모호해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다) 지상교통보다 지하철을 더 선호하고, 지하철을 타기에 애매한 거리에 관광지들이 나열되어있어 어쩔수없이 걷게된다. 하여튼 다리가 쉬고싶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그냥 눈을 붙이기에 아쉬운 프랑스의 첫날밤이었기에 사촌동생과 누나를 따라 베아슈베 백화점을 들렸다. 명품의 나라만큼 이름난 브렌드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 있기도 하지만 중저가 브랜드가 많다고 한 점과 아울러 알록달록 캐쥬얼하고 세련되게 옷을 입는 프랑스 사람들의 아이템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얻어보고자 방문했다. 그런데 웬걸 특별하거나 유별난 아이템은 기대에 반의 반에도 못미칠만큼 없었고, 가격도 막 착한것도 아니었다. 7월과 12월 언저리가 프랑스에서는 세일 기간인데, 가격을 높여 할인해 평소보다 크게 차이 없는 할인폭을 보이는 한국과 달리 실제로 표기된만큼 할인을 진행해 아주 큰 가격 감소를 실천한다는 이모 말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원체 물가가 높았던게 함정이었다.
베아슈베 백화점과 근처 상가 모습들.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가 치진 몸도 일으켜세운다. 잠깐 구경을 마치고 - 18시에 백화점 문을 닫는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시스템이 그 언저리에 마감한다 - 사촌동생이 추천한 꿔바로우 맛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프랑스라 그럴까? 같은 음식이어도 독특한 맛이 나서 재미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온지 한참 된것같은데 프랑스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웃픈 상황. 기대감은 배가 된다.
꿔바로우 맛집 음식들. 한국에서 먹었더라면 예상이 가는 맛이었겠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어서일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맛이었다. 사진 찍는다는게 그만 다 먹고 한 조각 남은 꿔바로우. 25km를 걷고나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1년동안 지낸 이모가 말하기를 못해도 하루 10km는 걷는다는데 이렇게 다니면 건강하지 않을수 없겠다. 운동 얘기가 나와서 드는 생각인데 남자들중에 근육으로 다부진 몸매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파리 곳곳을 누비며 PT나 크로스핏, 수영처럼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을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걸 떠올려보니 그런 인프라가 부족한것도 이유이겠거니 싶고 하루 10km를 넘게 걷는 사람들이 운동의 필요성을 많이 느낄까 싶기도 하다. 하루중 대부분을 앉아지내는 한국인들이나 찾아서 운동하나보다.
아하 오늘 해냈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는 바로 혼자서 파리 지하철을 탔다는 것이다. 이건 파리 생활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데 소매치기, 인종차별 등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의식을 깨트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 수도권 지하철보다 낙후되고 좁으며 알수없는 냄새 등 어두운 분위기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큰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인데, 결국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며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프랑스 지하철과 티켓. 티켓이 종이로 되어있고, 핸드폰이랑 가깝게 두면 마그네틱이 손상되어 못쓴다고 한다... 두손 가득 캐리어에 당황하고 조급한 표정, 불안한 눈동자 누가봐도 가득 긴장한 파리 초행자는 표적이 될법도 하다. 최대한 관광객 티를 벗어버리고 현지인인 척 하는게 그들과 함게 어울리는데 포인트다.
길지만 값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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