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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유럽여행] 피렌체 여행 | 미켈란젤로 언덕과 스탕달 신드롬일상 2023. 2. 15. 14:59
0. 아무런 기록이 없다.
이번 한 달 여행 중에 손꼽아 기다리고 가장 기대했던 날인데 모순적이게도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부지런히 피렌체 곳곳을 다니느라 너무 피곤한 나머지 숙소에 돌아와 일기를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넘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빛났던 순간을 조금 남은 기억이라도 붙잡고 기록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얼마 남지 않은 사진을 훑어보며 일기를 쓴다.
1. 베키오 궁
피렌체에서 여러 공무를 다루는 곳이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시청 같은 곳이었는데 메디치가가 한창 잡고 있을 때에는 매디치가 전용 집무실 같은 용도처럼 쓰였다고도 한다. 꼭 가봐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도시 평의회가 열린 500인의 방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내부 공간의 규모도 어마어마할뿐더러 층고가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화려하고 정교하게 천장을 꾸며 둔 것이 인상 깊었다.
베키오 궁과 500인의 방. 빈틈없이 아주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두 번째로는 다름 아닌 마키아벨리의 방을 구경하기 위함이었는데. 내가 얼마나 피렌체를 기대했냐면 2년 전 교양 수업 때 들었던 자료들까지 꺼내가며 피렌체 건축에 대해서 공부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 공무원으로 지냈던 마키아벨리에 대해서까지 공부했었다. 그가 피렌체를 위해 일하다 메디치가가 쫓겨나며 자연스레 시골로 유배당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쓴 책이 바로 <군주론>이다. 그 책을 무려 2번씩이나 읽었고 그래서 더 보고 싶었다. 안쪽 깊숙이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3층 즈음에서 마키아벨리의 방을 찾을 수 있었는데 여태 지나왔던 공간은 화려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반면 마키아벨리가 일했다고 하는 곳은 너무나도 단조로웠다. 장식이라 할 것도 없이. 안쪽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닫혀있어 보지도 못했지만 그 유명한 초상화를 오랫동안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사모했던 연예인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느낌이었는데 눈앞에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아 오랫동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덧붙여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권력가를 가까이하며 일을 했다면, 왜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새삼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세 번째로는 바로 베키오 궁 전망대에 올라가 보는 것이었는데. 운이 정말 안 좋게도 비가 내려서 안전상의 이유로 막아버렸다. 물론 피렌체 대성당 돔에도 올라가 봤지만 거긴 피렌체 대성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피렌체 대성당과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 그중 손꼽아 전망이 좋았던 베키오 궁을 꼭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비가 그치고 돌아와 다시 물어봤는데도 올라갈 수 없단다. 이틀 뒤에 찾아갔을 때에는 하루치 표가 동나있었는데 꼭 예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타크로체 성당을 찾았다.
2. 산타크로체 성당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한번 즈음은 꼭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건물이었다. 입면을 보면 대칭과 균형이 잘 잡혀있는데 이를 지은 사람이 바로 아르놀보 디 캄비오가 지었다(베키오 궁전과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도 설계했다). 그가 이 건물을 지으며 르네상스적인 건축법에 대한, 특히 대칭과 균형 조화에 대해서 책으로 정리하게 되었고 이렇게 르네상스 건축이 이론적으로 정립된 책이 널리 퍼지도록 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멀리서도 바라보고 가까이에서도 바라보고, 옆에서도 바라보며 한참을 음미했다. 내부에는 마키아벨리를 비롯해 유명인들의 묘가 있다고 하는데 입장료도 비쌀뿐더러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산타크로체 성당 입면 3. 미켈란젤로 언덕
해가 떠 있을 때 한번 찾고 해가 지고 난 뒤에 야경을 보러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서둘러 움직였다. 가장 빠른 길을 가는데 '베키오 다리'바로 옆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이동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랜드마크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랜드마크가 제대로 보이는 곳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뜻밖의 횡재와도 같았다. 옆으로 건너며 샅샅이 훑어봄은 물론이고 베키오 다리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뒤에 움직였다.
베키오 다리. 멀리서 바라보는게 더 멋있다. 사진상으로는 가까워 보였는데 막상 움직여보니 거리가 꽤 되었지만 설레는 마음이 앞서서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공사 중으로 막힌 길이 곳곳에 있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프랑스의 문호 마리 앙리 베일이 피렌체를 처음 봤을 때 그 아름다움에 주저앉고 말았다는 사건을 계기로 그의 필명을 따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말이 이해가 되는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사람이 우리 말고는 거의 없어서 너무나도 여유 있게 경지를 즐기고 사진을 찍었다. 인생에 다시없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떠나지 않고 하루종일 그곳에 서 있고만 싶을 뿐이었다. 그림 같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곳이었다.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미켈란젤로 언덕 풍경 4. 산 미니아토 알 몬테
피렌체에 대해서는 공부를 정말 많이 했는데 특히 기대했던 것들 중 하나가(사실 기대하지 않은 게 없어서 이 수식어는 어디에나 다 붙는 것 같다) 바로 '산 미니아토 알 몬테'였다. 미켈란젤로 언덕 뒤쪽으로 더 나아가면 있는 성당인데 높이가 미켈란젤로 언덕보다 훨씬 높아 눈에 더 잘 들어올뿐더러 도시를 내려다보는 방향 자체도 달라 그 또한 꼭 방문해봐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살면서 수천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겠지만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봤고, 한참을 내다보다 그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언덕을 내려왔다.
5.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집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어려서 부모님을 일찍 잃고 어린 여동생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여동생의 결혼식 자금을 위해 경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사실 좀 뜻밖의 모습이긴 했으나 안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는 생각도 든다. 그는 젊어서부터 영특했기에 모 대학 교수로 들어가게 되었고, 유명인들의 자제들을 과외하며 큰돈을 벌면서 인맥을 쌓게 된다. 훗날 그는 그렇게 쌓았던 인맥을 믿고 지동설을 발표하게 되는데 하필이면 천주교에서 천문학적으로 굉장히 예민하던 시절이라 목숨만 간신히 건지게 되는 벌을 받게 된다. 바로 가택연금이었는데 그가 머물렀던 집 중 하나가 근처에 있어 방문했다. 지나가다 있어 방문했는데 역시 특별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지내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발견을 남긴 집이라고 하니 괜히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집과 가는 길. 베키오다리 위.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서 숙소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베키오 다리를 지나 우피치 미술관을 가로질러 집을 향했다. 원래는 보볼리 정원과 피티 궁전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미켈란젤로 언덕이 생각보다 멀어 이미 치진 데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전경을 보며 이미 절정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굳이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6. 티본스테이크
딱 24일이었고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오늘 저녁만큼은 좋은 음식을 먹어보자는 합의를 하고서 유명 레스토랑을 찾았다. 예약이 필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방문해서 물어보면 자리가 있을 때가 많다. 안쪽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스파게티와 티본스테이크를 시켰다. 얼마나 큰지 내 양손을 펼친 크기보다 컸다.
원래 피렌체가 가죽공예업으로 유명해서 자연스레 육류도 많이 다뤄지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티본스테이크라고 한다. 뭐 원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원조라고 하니 큰돈을 주고 먹어봤는데 아주 인상 깊었다. 또 크리스마스를 누구보다 더 특별하게 보내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특별한 집화를 열고 있는 것 같았다. 7. 피렌체의 야경
식사를 하고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야경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복 1시간 30분 정도 먼 길이었지만 가는 길 자체도 너무나 아름다울뿐더러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사람도 없어 한적하니 그 매력이 배가 되었는데, 그곳에 서서 박스에 담긴 무언가로 식사를 하고 계시는 분이 계셨는데 티본스테이크를 먹었음에도 부러웠다. 나도 여기서 저렇게 바라보며 먹으면 잊지 못할 좋은 추억에 될 텐데 싶은 생각이 스쳤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 뜻밖에도 너무나 한적한 미켈란젤로 언덕. 덕분에 여유있게 즐기다 내려왔다. 돌아오며 피렌체 대성당과 여러 건물의 야경을 둘러봤다. 조명이 쏘여지니 낮에 그렇게 봤던 건물도 낯설게 느껴지고 색다른 매력이 느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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