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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 |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일상 2022. 7. 14. 23:50
: 유럽여행 2일 차, 스위스 1일 차
엘리베이터에 닫힘 버튼이 없다.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깜짝 놀랄만한 일. 근데 누르지 않아도 빨리 닫힌다는 사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취리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7시 50분에 있어서 전날 12시에 잤음에도 4시 40분에 일어나 준비했다. 그리고 5시에 호텔 앞으로 볼트(프랑스식 개인택시)를 불러 타고 이동했다.
차 종류, 가격이 다양하다는 게 특징. 개인 짐이나 사정에 적합한 기사를 부르면 된다. 짐이 많아 SUV를 불렀고, 40분 가량 달려 50유로를 지불했다. 처음으로 개인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려봤는데 도로도 이국적이다. 때마침 새벽 여명이 한층 더 분위기 있게 한다
볼트를 타고 달리는 새벽길 드골 공항 도착. 혼자서 한번 겪어보니 이제 수속하는 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큰 공항 치고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만 빼면 다 좋았다. 2시간 일찍 왔는데 사람도 많고 출국 심사 줄이 길어 딱 적당했다. 공항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좋았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유럽 내에서 오가는 비행기가 많아서인지 시외버스 처럼 기계로 간단히 표를 끊을 수 있게 되어있다.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에 도착하니 6시 반. 못한 아침식사를 바로 앞 EXKI에서 해결했다. 나는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에 초코 크로와상, 에스프레소를 골랐는데 물가가 비싸다는 게 체감되었다. 근데 3명이서 아침 비용으로 30.7030.70 유로면 한국이랑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 같기도? 내가 고른 양 정도면 점심에 주로 먹는 정도고, 보통 아침에는 초코 크로와상에 에스프레소를 먹는다고 한다. 아무리 소식이 건강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만큼만 먹고 지낼 수가 있지? 든든해야 하는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EXKI와 아침식사. 생긴것처럼 가공된 것 없이 단순한 재료들이 들어가 삼삼하니 에스프레소랑 곁들여 먹으니 맛있었는데, 바게트가 딱딱해 입천장이 까졌다. 역시 면세점은 인천공항이 제일 좋은 게 분명하다. 샤를 드골 공항에도 있을 건 다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천공항보다 빈약한 느낌, 아니 느낌 아닌 사실. 하지만 여행 출발에서부터 지갑을 털리고 시작하기란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도 저도 못한다.
면세점과 아기상어. 여기서 만나니 신기함 조금, 자부심 조금, 반가움 조금 에어프랑스 기내에서 준 간식.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저가 항공 같은 분위기에 기대를 안 했는데 커피(커피, 차, 사과주스 중 1개 선택)에 간식까지 준다. 유럽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밖에 안 마신다는데 웬일로 한 컵 가득 커피? 나는 반가워서 맛있게 마셨다. 과자도 달콤 고소하니 괜히 제빵이 유명한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머릴 스쳤다.
비행기에서 준 간식 취리히 공항 도착. 북적이거나 부산스러운 느낌 없이 단정하고 조용해서 현대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직원분의 도움으로 빠르게 지하철을 찾아 내려갔는데 기차표값이 3명에 51유로(6만 8천 원)...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20분 정도에 불과했음에도 가격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취리히 공항 내부. 색감과 분위기가 세련되어 마치 현대 미술관 같다. 비싼 만큼 프랑스와는 다르게 지하철과 역이 매우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시멘트를 사용한 것 같으면서도 파피루스 같은 질감이 있다.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이 하나둘이 아닌 게 디자인이나 건축을 배운 사람이 아니어도 느껴진다.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왜 유럽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하는지 피부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중간 환승하던 역. 시간이 조금 남아 나와서 밖을 돌아다녔는데 중앙역이라 그런지 규모도 있고 사람도 많다. 카키색 스니커즈에 세련된 체크무늬 긴 양말. 무릎까지 오는 살구색 5부 반바지에 짙은 녹색 반팔 셔츠 뿔테 안경에 어울리는 야구모자까지, 한 손에 스케이트보드 캐주얼한 백팩. 내 또래로 보이는 친구가 옷을 너무 멋있게 입고 있어서 너무 사진을 찍고 싶었다. 멘트까지 생각하고 다가가려고 했지만 용기 부족으로 결국 실패. 가서 멋있다고 칭찬해주면 엄청 좋아하고 포즈까지 잡아줬으라는 사촌동생의 한마디에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왜 물어보지 못했을까? 그냥 좀 물어볼걸. 하지만 멋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분명 기회는 생길 거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역이 매우 길다. 그래서 구간이 나누어져 일정 구간에서만 정차하는 경우가 다반사. 이모가 설명해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2층 기차. 사실 지하에 있는 시간이 많아 지하철에 더 가까울 듯싶지만 가끔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차마 그렇게 부를 수가 없다.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 한가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인터라켄 웨스트까지 세 번 기차를 갈아탔는데 역마다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제각각 개성이 넘친다. 시멘트와 금속으로만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과거 상태를 잘 보존해 산업혁명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있고, 나무로 곡선을 만들어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역도 있다. 같은 게 있다면 역을 통과해야 하는 기차들밖에 없다.
나무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 매우 인상적이다. 기차 안 식당. 하얀 식탁보에 신경 쓴듯한 조명이 인상적이다. 기차가 부드럽고 천천히 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창밖 풍경이(좌) 그림 같아 비싼 가격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직이니까 참아야 한다. 드디어 도착한 스위스 인터라켄 웨스트와 1주일 만에 만난 부모님 그리고 1년 만에 재회한 누나. 부모님은 하루 전날 도착한 상태였고 숙소에서 만든 샌드위치를 들고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중을 나왔다. 어딜 가나 자유로운 분위기. 근처 계곡 옆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이자 첫 끼를 먹었다. 한국이었다면 사람들 시선이 쓰일 법도 한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계곡에서 속옷만 걸치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한층 편안하게 해 줬다. 3일 가까이 혹사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지라 가족을 만나 점심을 먹고 나니 10km 달리기 직후 다리에 힘이 풀리듯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와 덮쳤다. 방금 전까지 느끼던 긍정과 아름다운 광경은 어디 가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피로와 짜증이 샘솟았다.
산에서 내려다본 인터라켄의 모습 그래도 인터라켄에 온지라 산악 열차를 타고 산 꼭대기에 올라 인터라켄을 내려다봤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
1인당 28만 원 정도로 스위스 이동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사전에 예매해두었다. 비싸지만 이동 간 표를 끊어야 하는 불편함을 덜고 시간을 알차게 쓸 계획이라면 아깝지 않다. 숙소에서 씻고 누우니 한결 긴장이 풀린다. 눈꺼풀에 추가 달린마냥 감기지만 때는 3시, 한국시간으로 22시로 자버리면 결국 시차에 적응 못하고 한국시간에 또다시 귀속된다는 생각에 잠을 꾹 참았다. 시차 적응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사이에 장을 봐온 이모와 부모님, 누나. 스위스 돼지고기로 삼겹살과 한국에서 가져온 비빔냉면을 곁들인 저녁을 먹었다. 먹고 쉬고 나니 드디어 보이는 바깥 정경. 정말 세상 어떤 숙소가 이런 시야를 가질 수 있을까. 아무리 지켜보고 있어도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 가짜인 것 같았다. 실제로 존재할리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거대하고 장황한 장면에 끊임없이 압도된다.
머리맡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그린델발트에서 여름이 되면 매주 수요일마다 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전통 공연과 길거리 식품들, 갖은 공연들까지. 하필 숙소 1층이 무대장이라고 하니 아무리 피곤해도 절호의 기회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찍 잠들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고 시간에 맞춰 나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중년 밴드와 노래에 맞추어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 병맥주와 담배. 신혼으로 보이는 커플들과 뛰어노는 아이들. 대형견들과 등산객들. 자유로운 분위기와 다양성이 좋다. 처음에는 낯설어 팔짱을 꼭 끼고 맨뒤에서 지켜보다 나중에는 앞에 나가 몸을 흔들었다. 잘 추든 못 추든 상관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상관 쓰지 않는다.
그린델발트에서 열린 축제. 여름이 되면 매 주 수요일마다 열린다고 한다. 눈 마주치면 인사하고, 단순한 일에도 서로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탄하고, 모르는 사람과 병맥주를 부딪히고. 사람 사이의 경계심이 전혀 없어 좋은 곳이 이곳이다. 이곳을 다녀간 뒤로는 아름답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은 10시 반. 열시면 공연이 끝난다는 말과는 다르게 아직 바깥이 많이 시끄럽다. 어쩔 수 없이 이어 플러그를 끼고 자야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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