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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빼미 | 걸림 없이 매끄러운 전개가 돋보이는 영화
    일상 2022. 12. 10. 03:05

    서로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극 안에서 각자 역할에만 충실한 것이 인상깊다. 
    가령 '만식'은 초반부 매끄러운 진행을 돕는 데에만 쓰이고 격정의 순간에는 배제되는가 하면, 
    경수의 '아픈 동생'은 궁궐 안에서의 이야기에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매끄럽고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영화.

     

    이해 내용은 영화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마만이었을까, 친구의 권유로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탑건>이 한창 히트를 칠 때에도 영화관을 안 갔는데, <아바타-물의 길>도 개봉했는데 왜 굳이 <올빼미>를 보는 걸까? 내 손으로 예약을 하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기대도 전혀 안 했다. 말 그대로 기대를 전혀 안 했었다. 그런데 웬걸,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아왔기 때문일까?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너무 인상 깊게 봤다. 뭐 굴지의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냥 인스턴트 영화는 아닌 데다가 훌륭한 개연성, 몰입감, 공감을 이끌어낸 영화였다. 마음이 끌렸던 몇 가지 요소를 풀어보겠다.

     

     

    0. 독특한 소재

     맹인이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앞을 보는 맹인의 이야기, 독특하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는 영화였다.

     

     보통 이렇게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상황이 되면 그걸 이용해 답답한 상황을 연출함으로서 몰입감을 끌어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스페인 스릴러 영화인 <줄리아의 눈 (Julia's Eyes, 2010)>에서 시각 장애인인 주인공은 길을 찾지 못하고 사방을 헤매며 살인자로부터 도망 다니는 장면이 여럿 있는데, 매번 길을 헤매고 멀리 도망가지 못하는 그녀가 매우 답답하며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는 연출로 더 몰입하게 된다) 올빼미의 주인공이자 맹인인 '천경수'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일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이 인상깊었다. 몸이 불편하다고 오히려 불안한 요소로 삼지 않고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했던 것이 어쩌면 이 영화가 더 특별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1. 세련된 유머감각

      애당초 가벼운 주제는 아닌지라 웃음을 주는 부분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지함은 짙어지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초반부 굉장히 세련된 방법으로 가벼운 웃음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이런 사극 영화에서는 종종 억지스럽고 과장된 몸짓이나 말, 행동을 통해 웃기는 경우가 많은데 과장이나 보탬 없이 담백한 캐릭터 본연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웃음을 준다. 아울러 그 타이밍이나 정도가 적당해 몰입이나 흐름에 전혀 방해를 주지 않는다.

     

     가령 '천경수'가 처음 궁궐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의 곁을 지키며 도와준 '만식'이 약초를 다듬다 경수에게 세자의 비밀을 속삭일 때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중전이 다 듣고 있던 장면에서는 모르는 옆사람은 물론이고 극장에 있던 모두들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일 뿐만 아니라, 그 연출이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항상 상기되어있는 듯한 만식의 캐릭터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만들어낸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진하게 약초를 달이듯 그 재료에서만 얻어진 육수로 몸을 덥히듯.

     

     더하자면, 약초방 뒷편에서 밤마다 꽁냥 거리던 커플에게 '경수가' 약초 더미를 집어던지는 장면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분명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 '재미있는(웃음을 주는) 영화였구나'라는 기억을 남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존재감 있는 웃음을 준 영화였다.

     


    2. 영의정 최대감의 현명함

     그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는 인조 왕 때 강력한 청나라가 등장하며 조선이 섬겨온 명나라를 몰아내고 실세에 오르게 되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두고 있다.

     

     나야 그에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봤다면 시험문제를 두고 옳고 그름을 나눈 것뿐이겠다. 그러나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강력한 몰입감이 있었기에 내가 그 영화 속에 흡수되어 마치 내 걱정인 듯 생각해 봤던 것 같다). 

     

     영의정인 최대감은 청나라가 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왕에게도 명을 섬기는 것을 그만두고 청을 섬기기를 권하게 되는데, 인조는 남한산성에서의 굴욕을 잊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전통을 지키고자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조선이 어떤 사회였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시대든간에 기존의 방법들을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굉장히 혁신적이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그것을 영의정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보이니 단연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눠 후반부로 갈수록 영의정 최대감이 '선'의 역할을 될 거라는 예측을 배제해도, 나는 그런 최대감의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캐릭터가 주인공보다 더 마음을 끌게 했었다.   

     

     

    3. 화장실 갈 타이밍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지만 이보다 솔직한 표현이 없을 것 같아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커피를 한 잔 해서 화장실이 급했다. 초반부야 그냥 참을 수 있었다지만 시간은 인내심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하지만 절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는 것. 

     

     초반부는 물론이고 특히 중반부의 흡입력이 대단한 영화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빠른 전개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천경수가 궁궐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은 굉장히 짧게 느껴지고, 실제로도 짧다.

     

     아울러 그에게는 아픈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인물들의 발목을 잡을 것만같아서 그런 요소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픈 동생의 역할은 주인공 경수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결말에 결국 경수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사용되었다는 데에 놀랐다. 

     

     또 경수가 처음으로 궁에 들어왔을 때 눈치를 준 꼬마 의원이 있었는데, 여느 영화들이라면 분명 이 꼬마에게 통쾌하게 복수 비슷한 것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 마련인데, 인위적으로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경수가 소현세자를 만나 궁궐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 꼬마가 경수의 수발을 들게 되는 잠깐의 장면만으로 그 통쾌함을 전달했으니 대단하지 않다고 할수가 없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이형익이 독침을 놓는 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부분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감탄이 나오는데, 촛불로 상황을 알 수 없던 경수는 수건에서 이상한 향을 느끼는 등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극에 달한 순간 촛불이 꺼지며 그 현장이 경수의 눈으로 밝혀질 때에 그 긴장감은 영화 전체에서 최고의 몰입감을 보여줬다 할 수 있겠다. 경수의 시선에서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 깜짝 놀랄만큼 참신한 방법이었다.

     

     핵심은 걸림돌 없이 막힘없이 흐르듯 나아가는 전개와 그만큼의 몰입감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포기해야 했을 텐데, 그 노력이 짐작될 정도로 전개에 힘쓴 영화인 듯 했다. 

     

     

     

    4. 사지로 몰아넣기 위한 말

     천경수는 그 자체로도 능력이 뛰어나고, 자연스럽게 여러 높은 사람들 눈에 띄어 인정받게 되었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이리저리 뛰어 다니게 된다.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이때 모습을 드러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리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중전에게 투서를 하지만 정작 인조 왕 앞에서는 오히려 이형익을 감싸려고 하는 모습에서 그러함을 느꼈다.

     

     그런 필사적인 노력 끝에 진실이 밝혀지나 싶지만, 결국 그도 장기판 위의 말에 불과했다는 것이 슬펐다. "높은 사람들이 윈하는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서로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말에 불과했구나"라는 말이 결말 부분에서 머릿속을 스쳤고, 차라리 '만식'의 말처럼 들어도 못 들은 것처럼 봐도 못 본 것처럼 행동했더라면 경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결말은 '쓸쓸한 해피앤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비극과 희극의 양면성을 모두 가져서 더 좋았던게 아닌가 싶다. 끝부분에 다가갈수록 이 영화는 비극일까 희극일까 궁금해하며 애간장을 탔는데 결국 둘 모두를 갖춘 결말을 보여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5. 후반부 디테일의 아쉬움

     앞에서는 중반부의 몰입감이 대단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현실감이 떨어져 아쉬웠다. 오히려 초반부에 보여줄법한 과장된 몸짓이나 대사를 후반부로 갈수록 격정 되어가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진지해야 할 상황에서 아주 조금의 우스꽝스러움이 분위기를 해쳤던 게 아닐까 싶다. 

     

     아울러 힘있게 잘 짜인듯한 스토리와 개연성을 보여줬던 중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 과하다 싶은, 현실과 동떨어진듯한 진행이 여럿 보였는데 예를 들어 경수가 왕에게 마비를 일으키는 침을 두거나, 침으로 왕에게 협박을 하거나, 궁궐을 지킬 정도면 나라에서 손꼽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우수한 경비병을 맹인이 제압한다거나, 왕과 영의정이 격 없이 서로 합의를 보는 장면들이 그러했다.

     

    화장실을 조금이라도 더 늦게까지 참아볼걸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뒤로갈수록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6. 캐스팅으로 추측가능한 전개

     이건 아주아주 작은, 옥에 티 같은 요소였다. 왕이 유해진 님이라니? 사실 조금 놀랐다. 평소 여러 예능에 출연하셔서 많은 웃음을 주셨던 모습들이 눈앞을 스쳐나갔고, 뿐만 아니라 제법 여러 영화에서 웃음을 자주 주셨다(<공조>, <러키>등등..).

     

     반면에 조성하 배우님이 연기하신 최대감은 중후하며 무게감 있는 대감의 역할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다.

     

     그런 기존의 캐릭터들이 오버랩되어 사실 초반부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굳혔던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인조와 영의정의 대립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영의정의 편을 들게 되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오히려 한번 더 꼬아서 조성하 배우님과 유해진 배우님이 서로 역할을 반대로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앞에서 반복해서 말했듯, 이 모든 것들이 이렇게 매끄럽고 강력한 몰입감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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