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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트풀8[The Hateful Eight] | 영화계 불문율을 보란듯이 깨부신, 뚜렷한 개성
    일상 2022. 8. 28. 16:25

     

     

    0. 몰라도 알수 있는 깊은맛

    커피도, 와인도, 뭐든 처음 맛보는 음식은 이게 훌륭한지 아닌지 판단할수가 없다. 그저 경험이나 취향에 근거해 입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그 정도에서 그칠 뿐. 그 이상의 분석이나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공부나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이 필요하다. 가령 다 비슷하게 느껴지던 커피가 어느새부터 신 맛, 부드럽게 쓴 맛 가려서 찾게 되는 것처럼.

    대부분은 그렇지만 이런 경험과 취향을 초월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중학교 때 가족여행을 가서 국가대표 바리스타가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을 처음 보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에는 집에서 부모님이 커피를 내려마시지도, 내가 커피를 즐기거나 찾아마시지도 않았는데.

    그런 비슷한 충격을 받은 영화였다. 첫 장면부터 전개와 흐름 결말, 반전까지 모든 순간동안 긴장의 끊을 놓지 못하고 집중하게 하는 좀잡을 수 없는 깊디 깊은 매력이 있는 영화라고나 할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의 명성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왜 고평가 되는지-그분의 작품들이 어떤 부분에서 고평가 되는지 알고,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도 아닌데-전혀 몰랐기에 여느 영화 보듯 보았는데 시선을 뗄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내가 커피를 전혀 모르던 때에 마셨던 국가대표 바리스타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5성급 호텔 쉐프님이 요리했다는 사실을 숨겨도 음식 맛을 보면 쉐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추측할 수 있듯, 타란티노 감독님의 첫 작품이었지만 그 충격은 영화가 끝난지 한참이 지나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과 배우들

     

     

     

    1. 독특한 음악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방 안에 있는데 아빠가 여느때처럼 영화를 트셨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구조물 뒷편으로 마차가 달려오는 첫 장면에 흘러나오는 그 기이한 음악은 단번에 뛰어가 두 눈으로 어떤 영화인지 확인하고 싶게 하는 그런 음악이었다. 당장 그 음악을 찾아서 들어봐도 금세 궁금해져서 영화를 보고싶어질지도 모른다.

     


    지하철 델리만쥬 냄새처럼 구미를 심각하게 당기지만 막상 그 맛과 냄새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바람에 아쉬움을 가져올수도 있겠지만, [헤이트풀 8]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에 감사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가 말하는 맛이란 혀로만 느끼는게 아니라 혀로 느껴지는 맛과 온도 그리고 향 등 복합적인 요소들의 종합인 것처럼 삽입된 모든 음향이 영화(映畫: 비칠 영, 그림 화)를 더욱 풍만하게 해 주었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 종류의 음악이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해서 영화의 독자적인 개성을 뽑낸다. 오컬트하면서 고어한 분위기의 영()과 화()에 음악이 화룡점정이 되어 한단계 더 높은 예술로 승화되었다.

     

     

     

    2. 독특한 화면비율과 구도

    영화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것은 아니지만 화면이 가로로 정말 길다는 것 정도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16:9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느껴지는데 영화는 그보다 더 긴 것 같았다. 약간의 이질감이나 시각적인 불편함을 느낄만도 한데 오히려 더 다양한 연출을 통해 그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점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없었고, 오히려 개성과 장점이 되어준 격.

    예컨대 마지막 장면에 침대에 누워있는 워렌 소령과 바닥에 쓰러진 크리스 매닉스를 한 장면에 담게 되는 순간을 보면. 앞에 나와있는 크리스 매닉스의 뒷배경은 블러처리가 되어 당연히 워렌 소령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걸 워렌 소령이 누워있는 공간은 초점을 무시하고 또렷하게 보인다. 그 긴 화면을 가로로 절반 나누어 왼쪽은 크리스 매닉스에게, 오른쪽은 워렌 소령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서 마치 그 순간 고민하는 크리스 매닉스에게 정신적으로 속삭이고 설득하는 워렌 소령의 포지션을 부각시키고 역할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아울러 그런 시법적인 시도 덕분에 예술성을 느낄 수도 있었고.

    덧붙여 워랜 소령이 샌디 스미더스 연합군 사령관을 살살 약올리는 장면에서 얼굴을 확대해서 보여줄 때에도 그만의 장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가로로 화면이 길어 한 화면에 얼굴을 모두 담게되면 얼굴 양 옆으로 길게 초점이 맞지 않은 배경이 늘어져 표정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얼굴 가로를 화면 가로에 맞추어 확대했을 때 이마, 눈살, 눈, 코, 입 이렇게 한 부위씩 보여줄 수 있어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만약 화면 사이즈가 3:4였다면 화면을 전부 키웠을 때 이마부터 코까지 전부 잡혔을 것).

     

     

     

    3. 입담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지치지 않고 떠들며 주고받는 대화가 큰 재미가 되어주었다. 이때 중요한건 '주고받는'인데 정말 누가 한마디 던지면 그에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인물의 말재간이 감칠맛나고 짧막한 코미디를 보는 듯 재미있었다. 백번 설명보다는 한번 보는게 낫겠다.

     

     

     

    4. 기름같은 사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은 능글맞으면서 말재간이 능숙한 오스왈도 모브레이(사형집행인)를 염두하며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나는 크리스 매닉스 캐릭터가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마냥 유치하게 힘있는 사람에게 줄타기를 하기도 하고(총을 든 워렌 소령, 연합군 사령관인 샌디 스미더스 등) 꼭 험악해진 분위기 중간에 끼어들어 상황을 무마하려기보다 신경을 긁는 한마디씩을 덧붙여 일을 키워 결국 사고를 나게 만드는 불씨에 기름같은 인물이다(우렌 소령의 편지에 대해서, 샌디 스미더스와 워렌 소령과의 말싸움 등). 그런 점에서 눈길이 많이 가는 캐릭터였다.

     

    새로운 보안관 크릭스 매닉스

    물론 가장 눈길을 많이 끌었던 인물은 '오스왈도 모브레이'였고.

     

     

    5.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의 사망

    주인공이 누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오두막 안에서 큰소리도 떵떵 치며 총을 빼앗기도 하는 등 존 루스가 큰 비중을 자치하고 있어 주인공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어이없게 독이 든 차를 마시고 힘앓이없이 아주 잔인하게 죽어버려서 깜짝 놀랐다. 뿐만 아니라 샌디 스미더스가 죽은 바로 직후였기에 예측보다 한발 더 빠른 진행에 놀라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두막의 실세 존 루스

     

     

     

    6. 영화계 불문율을 보란듯이 깨부신/감독만의 독자성 고집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번에 타란티노 감독님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관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성과 스타일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불문율이라 하면 여자를 때린다거나, 노골적인 벗은 몸이라던지, 외설에 가까운 성적 표현, 거북함이 들지 않을 정도의 부상 표현과 피의 양 등이 있는데 [헤이트폴8]에서는 그런 것들은 모른다는 양 당당하게 자기만의 개성을 따랐다.

    불편함이 거론될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결국 영화의 상업성과도 연결되며 낮은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지만, [헤이트폴8]은 영화를 위한 영화인 것 같아 그 신선함이 남다를수밖에 없다. 물론 감독님이 지닌 영화적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지 단순 근거 없이 자기만의 개성을 쫓는 경우는 혐오에 가깝게 싫어한다.

     

     

    7. 고어함의 예술성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앞서 말한 음향은 여태 들어봤던 것들 중에서 손꼽게 잔인하다. 사람이 총에 맞는 소리를 직접 들어본적은 없지만 진짜 소리를 들어본다면 이 영화 음향효과와 많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되는 그런 음향이 어울렸다.

    피를 흩뿌리듯 토하는가 하면, 총을 맞자 피가 솟기도 하고(사극처럼 분무기먀낭 뿌려지는게 아니라 정말 실감나는), 시간이 점차 갈수록 피로 적셔지는 사람과 가구와 옷들, 서슴없이 팔을 잘라내기도 하며 보란듯이 산 사람을 공중에 매단다.

    불편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고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거북함이 든다. 다만 내가 가리키고싶은 것은 바로 그 고어함이 오로지 극도의 공포심과 몰입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한 단계 높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표현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과한 해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혹은 인간)의 잔혹함이라던지, 작게 거론되는 인종간 갈등의 폭력성이라던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던간에 고어함에서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냥 잔인하지 않고 예술성이 느껴졌다는 것. 예술과 고어를 스펙트럼 양 끝에 두면 이 영화는 중심에서 약간 왼쪽으로 더 치우졌있다. 똑같은 사과를 그려도 내가 그린 사과와 세잔이 그린 사과에서 느껴지는 바가 다르듯 타란티노 감독님이 그린 장면은 시선을 끄는 그런게 있었다.

     

     

    8. 링컨의 편지가 진짜던 가짜던

    크리스 매닉스가 워렌 소령이 가지고 있는 링컨의 편지가 가짜라며 굴욕을 주는 장면이 있다. 이에 워렌 소령은 이를 인정하고 '흑인들이 안전하려면 백인들이 무장 해제를 해야하는데, 이 편지는 그에 정말 유용했다'며 덧붙인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도머그를 교수형시키는데 성공한 매닉스는 워렌에게 편지를 다시 보여달라고 하고 편지를 제 목소리로 다시 읽는다. 그 편지에는 '당신같은 사람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등 워렌 소령을 진심으로 지지한다는 말이 있었다. 정말 그 편지는 링컨이 손으로 써 주었던 걸까 아니면 워렌 소령이 직접 쓴 편지였을까.

    진짜였다면 워렌 소령은 링컨에게 인정을 받았던 인물이었다는 셈이고. 가짜였다면 그 편지를 워렌 소령이 직접 썼다고 봐야 할 텐데 그런 전제에서 '당신같은 사람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등 그를 지지하는 내용이 마음에 걸려 울적했다. 인종차별을 당하며 온갖 핑계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하던 스스로에게 저런 말을 직접 쓰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했을까? 눈물이 흘러나왔을까? 비굴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떳떳했을까?

     

    워렌 소령은 편지를 품에 넣고 소중히 여긴다.

     

     

     

    9. 챕터 구분

    글을 마치려다가 문득 떠오른, 빼놓을 수 없는 구성. 바로 챕터의 구분이다. 이는 영상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음향과 삼박자를 이루어 으스스한 간접적 공포 분위기와 동시에 검은 배경에 흐릿한 흰색 글씨는 마치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를 떠올리게 해 1860년대 남북전쟁 특유의 문화적 내음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챕터의 구분이 각각의 사건을 부각시키면서도 옵니버스 형식으로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니 영화의 큰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챕터의 제목을 기억하면서 펼쳐질 사건에 대해 추론해가는 것도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모든 사진의 출처는 : 네이버 영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921668&qvt=0&query=%ED%97%A4%EC%9D%B4%ED%8A%B8%ED%92%808%20%ED%8F%AC%ED%86%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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