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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유럽여행] 여행을 준비하며일상 2023. 1. 25. 15:44
0. 여행은 준비가 반이다.
군에 있을 때 대학교 친구와 전역 후 한 달 동안의 유럽 여행을 약속했고, 고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던 날들도 많았다.
그와 별개로 전역 직후에 가족들과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을 가 있던 누나가 모든 예약부터 준비를 끝내뒀기 때문에 여느 때와 같이 보여주는 대로 보고, 먹여주는대로 먹는 그런 여행의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아주 평범한 여행이었다.
후에 홀로 여행을 준비해 보며, 여행을 준비하는 데에는 제법 큰 수고와 시간을 필요로 하며 때문에 이렇게 누군가 여행을 준비해 준다는 것이 무척 편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투어를 신청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런 수고와 시간을 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었겠구나 하는 이해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금 생각하보면 여행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걱정과 긴장이 설렘보다 앞서는 준비 기간과,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 다다랐을 때 설렘이 그것을 압도하는 그 순간으로. 그러니까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여행은 사실 반쪽짜리 여행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 홀로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스스로 온전한 의미의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의 모든 여행들, 다시말해 교회 MT 비슷한 것들도 결국 누군가의 수고로 만들어진 계획에만 따라갔었기 때문에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숙소? 관광지? 심지어 한 달이라는 긴 기간을 계획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처음이니만큼 많이 헤멨고 아쉬운 부분들이 제법 있다. 예컨대, 지역 축제나 동선 등 관광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전혀 수집하지 않고 그저 어느 나라만 방문할 것인지 합의한 후에 비행기 티켓부터 끊었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비행기 티켓은 무조건 빨리 끊어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때문에 나중에 비효율적인 동선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은 물론이고 비용도 적잖이 들었다. 또, 크리스마스 마켓/새해맞이 행사 등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애를 좀 먹었었다.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리저리 걷잡을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겼을게 분명하다.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할 때에는 비용이 아쉽지만 몇 만 원씩 더 들여 환불 또는 예약 변경을 할 수 있는 조건의 상품들을 선택했는데 당시에는 무척 아깝게 느껴졌지만 덕분에 후에 유연하게 일정을 조정하여 마음에 드는 일정을 갖출 수 있었다. 미숙한 준비 중에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다(사실 호연이의 간곡한 부탁 덕분에 그럴 수 있었다).
아울러,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예약, 체크인, 수화물, 투어신청, 숙소 예약, 비행기 티켓 수정 등 대학생 때에 이런 귀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음에 큰 감사가 된다. 훗날 여행을 준비하게 되면 능숙하면서도 돌발적인 상황들을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다.
돌아보면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준비할 수 있었음에 큰 감사가 된다. 아직 여행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경험을 토대로, 적어도 어느 순서로 여행을 계획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 것 같다. 또 여행 계획을 짜야한다면 자신도 있다.
2. 공부가 주는 설레임
지난 유럽 여행과 이번 유럽 여행의 결정적인 차이는 공부에 있다고 해도 부방할 것 같다.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 방문할 장소들을 직접 선정해 그와 관련된 시직들을 공부했다. 피렌체라는 도시를 공부하기 위해 2년 전에 들었던 교양 수업 자료들도 다시 프린트해서 읽어봤고, 심지어는 피렌체를 기대하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읽어봤다.
여행에 있어 공부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나도 그랬고. 분명히 있지만 그보다 내가 글로만 배우고 공부했던 것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정말 커다란 설렘이 있다. 하루빨리 유현준 교수님이 극찬한 판테온을 보고 싶고, 앙리 베일이 처음으로 피렌체 도시를 내려다보며 느낀 전율 즉 스탕달 신드롬을 나도 겪어보고 싶다. 그런, 단순히 타국을 방문한다는 것 이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설렘을 공부가 만들어준다.
아쉬움이 있다면, 진심으로 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이다. 유럽의 도시에 대한 책을 읽다 그만 시간에 쫓겨 반쯤 남겨두고 왔는데 그게 마음에 크게 걸린다. 그 책을 마저 읽었더라면 도시를 더 깊이 살펴보고 감동하고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3.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던 준비시간
정말 출발 직전까지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너무 낯설어서 외면하고 부정했다. 분명 여행이라 하면 매번 설렘이 앞서야 하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한 달 동안 역사탐방 비슷하게 일을 하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마도 직접 여행을 준비해 보며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돌발 상황들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프랑스 여행을 앞두고 유독 걱정이 많아 보였던 엄마가 갑자기 생각난다.
걱정이 되는 부분들이 많다. 소매치기에 대한 부분도 있고, 원래는 직항이 아니라 경유였기 때문에 짐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또 같이 가는 친구와 다툴까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해줬던 말이 걱정들을 막아서는데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시간이나 돈을 들이면 해결되니 이를 명심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이를 몸소 경험했다. 알바를 하다 사고를 쳤지만 돈으로 해결했다. 중요한 건 침착한 마음. 짐이 사라지고 여권을 잃어 버려도 침착하게 행동하면 된다. 또 그 당시에나 당황스러움 또는 불쾌한 기분 때문에 그렇지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별 일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쉬운 것들도 있다. 무엇보다 영어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 회화를 할 수 있었다면 하는 그런 커다란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첫 여행인데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하다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이미 지금 챙긴 것들만 해도 충분하다. 부모님 걱정시키지 않고, 건강하게만 다녀올 수 있다면 그걸로 오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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