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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유럽여행] 프랑크푸르트 | 크리스마스 마켓과 시내일상 2023. 1. 26. 18:02
- 프랑크푸르트, 도시와 사람 사이 구분 없는 곳 -
0. 사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을 방문하기로 예정했고, 그중에서 독일에 대한 기대가 가장 낮았다. 달리 말하자면 기대가 없었다. 이탈리아처럼 화려한 관광지나 유서 깊은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프랑스처럼 도시 전체가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들로 이루어진 구심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기대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첫 여행지이기 때문일까 매 순간 너무나도 즐겁고, 마음속에서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해서 해가 다 떨어져 깜깜해질 때까지 도시를 돌아다니면 매 순간 마음과 눈앞의 광경으로 얻어지는 즐거움은 신기록을 계속해서 달성했다. 가령 낮에 봤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밤에 들렸을 때의 그 전율과 감동,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은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었다.
하루동안 프랑크프루트를 돌아다니며 느꼈던 몇 가지를 기록하며 하루를 마치려고 한다.
1. 거리와 건물이 구분되지 않음
프랑스와 스위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유럽 거리를 돌아다니면 한국과 큰 차이가 느껴지는 하나가 있는데 바로 도로와 인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신호등만 있을 뿐, 바닥에는 한국처럼 뚜렷하게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차도의 점선처럼 간단하게 표시해 둘 뿐. 그렇게 도심을 한참 돌아다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차도와 인도 그리고 건물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작정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인도가 자연스럽게 건물 단지 내로 연결되는 것은 이론적인 도시에 대해 문외한인 나조차 감동받을 정도였다. 예컨대 한국에서 극단적인 경우 낮은 울타리 혹은 계단 비슷한 구조물로 층을 달리해 건물과 인도에 명확한 구분을 두려고 하지만, 독일에서는 도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물을 지나게 되었다.
느낀 바를 표현하자면 '건물이 인도와 사람을 빨아들인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건물 단지 내에 진입한다는 인식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를 인도한다. 그러니까 애당초 인도와 단지(건물)의 구분이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토지 혹은 건물에 대한 사유재산의 개념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도시와 융화를 잘 이루고 있는 건물을 좋게 평가해서일까.
하여튼 굉장히 세련되게, 자연스럽게 도시와 사람을 융화시키는 법을 독일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 복원된 도시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프랑스 파리처럼 오래된 양식으로 지어진 듯한 건물이 많다. 그러나 파리는 정말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인 반면 프랑크푸르트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분명히 파리와는 다른 인상을 풍겼다. 굳이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런 오래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테마파크에서나 느낄 법한 이질감을 풍긴다고 해야 할까. 노력했지만 어디에선가 디테일함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게 독일 건축의 모습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확실한건 그런 분위기와 모습을 기대하고 방문하기에는 많이 아쉬울 것 같다는 것이다.
3. 유복한 가정의 아들 괴테
계획에 없던 괴테 생가를 들렸다.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기 때문에 조금의 관심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집까지 찾아갈만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시간이 남아서 방문했다. 그런데 웬걸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을까 생각보다 많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은 0층부터 4층까지(부유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매 층 각 방마다 설명을 읽어가면서 다녔는데 거의 대부분의 방에서 '괴테 아버지의 바람이 반영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층마다 있는 계단을 어떻게 꾸미고 손님맞이 방을 어떤 분위기로 꾸밀 건지 아버지가 직접 간섭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괴테의 아버지는 예술에도 조예가 적잖이 깊은 듯했다. 집안 곳곳에는 고풍스러운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서재에는 책들이 가득했다.
그런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아버지 아래에서 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에 위대한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작품이 밝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굉장히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와 달리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유복했던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뭐 정말 그들 사이가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만 둘러봤을 때에 그들이 힘들었다 증언한들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모습보다는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집이었다.
4. 크리스마스마켓 낮과 밤
프랑크푸르트 곳곳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지만, 뢰머 광장에 가면 가장 큰 트리와 회전목마와 함께 마켓이 늘어져 있다. 해가 떠있을 때에 처음 방문해서 처음으로 독일 수제 소시지를 먹었고, 그 유명한 아펠바인(애플와인을 독일어로 발음한 것으로 따뜻하다)도 마셔보게 되었다.
낮에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세 바퀴나 돌았지만, 밤이 되었을 때에는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압도적인 부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낮에 놀라면서 봤던 그곳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더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낮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덜하지만 밤이 되면 정말 이곳이 크리스마스고, 진정한 크리스마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평일이었기 때문에 밤이 되니 일이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거리 곳곳에 빽빽하게 사람들이 잔을 하나씩 들고 떠들고 있었으며 특히 그 작은 전구들이 밝히는 분위기는 너무나도 포근했다. 낮에 앙상하게 보였던 트리는 작은 전구들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빈틈이 메꿔져 나무랄 데 없는, 정말 트리가 되기 위해 태어난듯한 완벽한 트리가 되어있었다.
그런 반전과 분위기 무엇보다 그들의 명절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과 화목한 분위기가 좋았다. 한국에서 은연중에 느낀 상업적인 분위기는 전혀 없이 그저 함께 즐기기 위한 그런 크리스마스였다.
5. 프랑크푸르트 대성당과 아쉬움
전망대를 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방문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매표소에 직원이 등장하지 않았다. 아쉬운 성당 안팎을 둘러봤는데 나지막이 찬양 소리가 들렸고, 예배 비슷한 무언갈 하고 있겠거니 싶었다.
예배하는데 머리 위에 관광객이 올라가는 걸 나쁘면 나빴지 좋게 생각할리는 없겠다는 생각에 좋게 말해 이해 솔직하게 말해 체념하고 돌아섰다.
6. 저녁식사와 맛있는 맥주
그 유명한 작센하우젠을 방문했다. 낮에 갔을 때에는 열린 곳이 하나도 없이 적막해 그냥 돌아왔고 해가 떨어지고 피곤함을 무릅쓰고 다시 방문했는데 여전히 적막했다. 평가가 아주 많고 높은 집을 미리 정하고 찾아갔는데 아주 외진 곳에 있어서 사실 조금 무섭기도 했었다. 그런데 웬걸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북적였다. 말 그대로 사람들과 목소리로 북적이는 따뜻한 곳이었다.
긴 테이블을 하나 두고 안내하는 대로 앉는 방식이었다. 적게는 두 팀에서 많게는 네 팀까지도 한 테이블에 앉는 듯했는데,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가까이 앉는 것이 익숙한 듯 보였다. 다행히 내가 앉은 테이블은 완전 반대쪽에 아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두 사람만 있었다.
맥주와 소시지 샐러드를 시켰다. 소시지를 먹어보자는 생각에 방문했는데 음식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그보다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맥주?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마셔봤던 그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과 느낌이 있었다. 정말 하나의 음료로서 그 맛과 느낌 때문에 자꾸 손이 가는 그런 음식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냐 하면, 일단 하나도 쓰지 않다. 맥주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쓴 맛이 전혀 나지 않고, 아무리 마셔도 알코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탄산의 정도가 콜라처럼 톡 쏘는 것이 아닌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정도였다. 원래 맥주를 마시다 보면 나중에 알코올과 쓴맛이 싫어 벌컥 삼키기 마련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끝까지 입에 머금으며 그 맛과 향을 느끼면서 마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차이인가. 다른 맥주들도 마셔보고 싶다.
소시지는 솔직히 아쉬웠다. 낮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어봤던 그 소시지와 비슷한 걸 기대했는데 한국에서도 먹어본 맛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7. 젠틀한 운전자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가 독일 도로는 굉장히 복잡해 보인다. 인도와 도로와의 구분도 잘 없고 신호등도 잘 보이지 않는다. 또 길에는 트램이라는 지상 열차가 함께 다닌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친구 말로는 운전면허를 따기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운전 실력이 평균적으로 높고, 한국 사람이 방문했을 때 도로 위에서 '다들 운전을 잘하는구나'하는 인상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도로를 걷다 보면 감동받을 때도 있다. 당연히 내가 서야 할 것 같은 순간에 도로 위에서 운전자가 당연한 듯 양보를 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또 나도 모르게 차를 막고 서 있을 때에도 경적을 울리거나 그러지 않는다. 빠르게 달리다가도 도로 위에 사람이 보이면 부드럽게 멈춘다. 그래서 친구랑 깜짝 놀란적이 한둘이 아니다. '이걸 멈춰준다고?' 하며
최근에 운전면허를 딴 것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면, 도로교통법을 강화하기보다 애당초 면허 기준을 높여 운전자의 소양을 상향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알아서 운전자들이 도로를 유연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끔. 한국은 실력이 부족하니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8. 날씨와 태양.
날씨가 정말 춥다. 히트텍을 입고, 두툼한 셔츠를 입고 패딩을 입었는데도 5시간 정도밖에 있으니 추웠고, 저녁에는 플리스까지 껴입었다. 코트를 입어도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인터넷에서도 그리 추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렇게 했으면 벌써 감기 걸려서 누워있을 뻔했다.
30 정도 추울 줄 알고 50 정도 옷을 챙겼는데 실제로 와보니 70 정도로 춥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독일의 겨울은 정말 춥다.
또 해가 늦게 떠서 일찍 지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하니 해가 굉장히 낮게 떠서 이동한다. 그래서 눈이 굉장히 부시다. 12~2시에도 눈과 해가 일직선상에 아이컨택을 하니 역광으로 사진 찍기도 애매하고, 선글라스를 찾게 된다. 좋은 게 있다면 시간별로 그림자가 금방 바뀌며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러 장면이 연출되어 같은 거리를 계속 돌아다녀도 지루하지가 않다.
9. 마이자일, 미로 같은 설계로 고객들 붙잡기
계획에는 없었지만 호연이의 권유로 자일 거리를 방문했다. 뢰머 광장이 구심가로서 지역적인 분위기를 더 강하게 내고, 축제나 특별한 날들에 주민들이 모여 함께하는 장소라면 자일 거리는 매우 현대적으로 꾸며져 있어 한국으로 따지면 강남이나 삼성역같이 백화점, 옷가게 등이 많은 거리다.
방문해 보면 H&M, 아디다스 등 현대적인 매장들이 즐비해 있는데 개중에서도 시선을 강력하게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마이자일 백화점이다(그 옆에는 갤러리아 백화점이 있다).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내가 느낀 바로는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공간이 부드럽게 휘어 건물을 그대로 관통하는 형상은 아주 인상 깊었다. 휜 정도가 아주 자연스러워 어떤 이질감도 들지 않았었다.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3층까지 돌아봤는데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휜 공간이 더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공간을 가장 크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박스형으로 만드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건물들, 심지어 판교 현대백화점처럼 이름난 건물들도 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이자일의 그런 공간적인 이득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 인상 깊었다. 대신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개성 있고, 독특했다.
판교 현대백화점이랑 비교했을 때 내부 매장들은 직선으로 분할되어 예상가는 위치에 있지 않고, 모두 곡선으로 휘어 있었다. 통로와 가게를 구분할 때에도, 가게와 가게를 구분할 때에도. 그래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길을 꺾어 돌아갈 때 그 뒤에 어떤 마켓이 있을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했다. 달리 말하자면 직선으로 공간을 이루었을 때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한 층의 매장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대신, 곡선으로 시야를 막도록 하면 그 뒤로 직접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한 매장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자일에 방문한 사람들은 더 꼼꼼히 내부를 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가까이서 매장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각 요소들이 예상가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특히 에스칼레이터가 불규칙적으로 위치하고, 방향도 제각각이었는데 실제로 나와 호연이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에스칼레이터를 찾기 위해 같은 자리를 몇 번 돌기도 했었다. 건물 내에서 규칙성을 갖고 있다면 회사같이 시간이 귀한 곳에서는 효율적이겠지만, 고객들을 최대한 붙잡을수록 좋은 매장에서는 좋지 않다. 미리 머릿속으로 동선을 계산하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지역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참 대단한 건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예술적이면서도 과감한 이득을 포기하면서(직육면체로 공간을 쓰지 않는 것) 예상되는 더 큰 이득(고객들을 마이자일 백화점 안에 가두는 것)에 기대를 거는 그런 모험심이 느껴졌다.
내부에서 길을 잃은 듯 뺑뺑 돌았던 사람 입장으로서, 그 모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거리를 거닐면 꼭 직각 정육면체를 기본으로 하는 건물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매 순간 눈이 즐거웠다. 하지만 꼭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프랙털 지수를 가져와 표현하자면(가장 질서 정연한 것이 프랙털지수 1, 가장 불규칙한 것이 2라고 했을 때 인간은 1.4 정도에서 가장 아릅답다고 느낀다고 한다) 1.8 프랙털 지수 정도에 달하는 불규칙성을 가지고 있었다. 피렌체의 마을이 피렌체 대성당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면, 이곳은 서로가 피렌체 대성당이 위해 경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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