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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서평 2022. 10. 2. 21:23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기다리며
해석이 온전히 독자들 손에 쥐여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무한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세상 모든 것들-존재, 생각, 작용 등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고 그것들은 매우 정교하게 얽혀있다. 예컨대 싹을 틔우기 위해 씨가 있고, 씨가 잇기 위해서 열매가 있으며 열매가 있기 위해서 나무가 있다. 이렇듯 하나의 존재는 직선상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아가 나무와 물, 빛과 나무, 물과 빛과의 관계 등 3차원적인 복합적 관계를 맺고 있음은 세상의 법칙이다.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에서는 이 법칙이 유효하지 않다.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고도라는 인물, 어딘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황량한 배경,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 그루의 나무, 흐름과 의미라고는 없는 대화 등.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각자 완전한 독립성을 가지고 무작위적으로 흩뿌려져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그 독립성과 무작위성에서 온전히 각자의 시선으로 법칙과 규칙성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요소의 완전한 독립성과 불규칙함이 이 책의 독창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모래알과도 같은 이야기 같았다. 그렇게 흩뿌려진 모래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무늬와 그림을 보았는가 하면, 오늘날 인생의 틀과 목적 없이 온몸에 힘을 푼 채 세상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인생을 떠올리게 되었다.
소시민이 곧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조차 가늠할 수 없고(황량한 언덕) 자신이 어느 때 즈음 있는지 모르며(시계도 없다)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른다(딱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과 장소, 기다림의 대상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않는 그들에게는 기다림 자체가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즉 해설에서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말이 납득 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불가불 대화의 끝을 붙잡고 의미 없는 말들을 던졌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고도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매일 기다림의 한계에 다다를 때 즈음 오는 것은 고도가 아닌 그가 보낸 소년이었다. 소년을 통해 내일은 기필코 가고 말겠다는 말을 전하는데, 만약 정말 고도가 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존재의 이유가 기다림에 있는 소시민들에게 고도의 의미는 오지 않을 때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가 오지 않았기에 그들은 기다릴 수 있는 것이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고도가 오게 되면, 그들은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리는 셈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고도는 죽음이자 종말로도 해석될 수도 있겠다.
그들이 오늘도 고도가 오지 않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는 생각을 해보았다. 무언가-그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기다릴 대상이 있다는 것. 희미하고, 무의미하며, 가치는 없으나 기대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무엇이 오늘도 주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51p포조 :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침묵)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69p
럭키가 말도 안 되고 문법에도 맞지 않는 말들을 장황하게 늘여놓는 장면
되지 않는 말들에 그럴싸한 문어체 단어들을 섞어 장황하게 말하는 모습이 꼭 나를 보는 듯했다. 럭키를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는데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럭키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나아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소시민이라고 생각했을 때 럭키의 말을 경청하고 놀라운 듯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럭키는 마치 오늘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허위 정보들을 내보내는 정보통신 매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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