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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서평 2022. 9. 30. 09:32
문명 사회에서의 안온한 삶을 거부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
겁 없이 나설 수 있었던 인간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귀중한 모험이었다.
안온한 삶은 그것을 탐닉하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래 내용은 『암흑의 핵심_민음사』에 함게 실린 해설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 작품이 소설 문학 본연의 허구적 속성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자서전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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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에서 작가 콘래드는 말로라는 이야기꾼의 입을 빌려 자기 자신의 체험담(콘래드는 실제로 1890년에 아프리카 콩고 강에서 기선의 선장으로 있었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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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이 다른 많은 콘래드의 작품처럼 <자서전적인 소설>이되 물론 순수한 자서전은 아니며 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실제 체험의 허구적 변용까지 어느정도 곁들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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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서술자 말로가 들려주는 체험담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의 벨지엄령 콩고의 어느 회사 소속 기선의 선장으로 취직한 그가 우여곡절 끝에 콩고 강 상류의 오지로 배를 몰고가서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커츠라는 주재원을 데리고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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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느 모험담과는 달리, 단순히 흥미 본위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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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표제인<암흑의 핵심>이 가리키는 것도 결국 커츠의 타락한 심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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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가 미처 커츠를 만나기도 전부터 차츰 자기 자신과 커츠를 한편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도덕적 결함이 없거나 적은 인물이 결함이 많은 인물 즉 도덕적 상반자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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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타락적 행위에 탐닉해 온 커츠에게서 말로는<도덕적 충격>을 받지만, 커츠에 대한 말로의 연대의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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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체험해 본 사람이 현세에 돌아올 경우 현세를 보는 그의 눈에 필연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듯이, 도덕적 상반자와의 정신적 자기동일시라는 악몽의 과정을 겪어 본 후에 말로는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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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에게는 커츠와의 만남이 어떤<암흑속의 핵심>과 같은 존재와의 만남이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만남을 통해서 말로는 자기의 삶을 조명하는 한 가닥의 빛과 거기 수반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말로는 아프리카를 향해 떠날 때의 말로가 아니다. 이는 커츠라는 인물과의 만남이라는 <체험의 절정>을 몸소 겪고 나자 마치 어둠 속에서 일종의 빛을 본 듯이 만물의 의미가 그의 눈에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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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안전을 보장해 주고 <푸주한>이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문명 사회에서의 안온한 삶을 거부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 겁 없이 나설 수 있었던 인간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귀중한 모험이었다. 안온한 삶은 그것을 탑닉하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런 평온한 삶에 안주하면서 자아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는 한, 인간은 삶에 대한 궁극적 지혜를 달성할 수 없으며 결국은 바보러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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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의 의미는, 말로의 비유를 빌려 말하건대, 마치 달을 애워싸고 있는 달무리처럼 번져나오기 때문에 일반 독자로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그 의미의 포착을 위해 노력을 들이는 사람이라면 노력하는 만큼 삶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12p
그가 보기에 한 에피소드의 의미는 견과의 씨처럼 껍질 속에 들어 있지 않았고, 바깥에서 그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었다. 즉, 그 이야기는 마치 이글거리는 빛이 일종의 얇은 안개를 이끌어내듯이 그 의미를 이끌어내고 있을 뿐이며, 그것은 달빛이 허깨비처럼 비칠 때 이따금 드러나게 되는 그 흐릿한 달무리 중의 하나에 비유될 수 있기도 했다.
15p
그들은 식민지 개척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들의 통치는 착취 행위에 불과했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 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괴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61p
자네들도 아다시피 나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증오하고, 혐호하고 또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저 거짓말이 내게는 무섭기 때문이야. 거짓말 속에는 죽음의 색깔이 감돌고 또 인간 필멸의 냄새도 풍기는 것이 아닌가. 바로 거짓말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증오하고 혐오하는 바이며 내가 잊어버리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네. 그리고 그런 속성은 마치 무언가 썩은 것을 한 입 물었을 때처럼 나를 비참하게 하고 또 구역질나게 한다네.
82p
그 땅은 이 세상의 땅같이 보이지 않았어. 우리는 정복당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데만 익숙해 있었거든. 그러다가 거기서 괴물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던 거야.
159p
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고.
159p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거야.
160p
…내가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 자신이 처했던 극한 상황이 아니야. 그건 육신의 고통으로 가득하고 만물의 덧없음이나 심지어는 고통 자체의 덧없음에 대한 무관심한 경멸로 가득한 형상 없는 회색 비전이었어
161p
그들은 침입자들이었으며, 삶에 대해 그들이 알고 있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허식에 불과했어…그들은 그저 자네야말로 완벽히 안전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평범한 개개인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따라서 위험에 처해서도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있는 바보들의 당치않는 허세 부리기처럼 내 마음에 거스르는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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