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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순수하고 연약한 마음과 과격한 상상력이 얼마나 파괴적인가서평 2022. 8. 24. 12:18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팽귄클레식 1. 줄거리
크게 1,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자기 몫의 유산을 받으러 온 마을에서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음을 알게된다. 2부에서 그는 로테와 자신을 위해 그곳을 떠나 하급 공무원으로 취직하지만 갖은 수모를 당하고 돌아와 로테와 제한된 사랑을 나누다 끝내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 자살한다.
2. 느낀 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까운 작품이었던 것 같다. 여태 봐온 많은 소설들은 사건과 구체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그 안에서 인물의 감정을 투영해냈다면 괴테의 글은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풍부하고도 미세한 표현으로 독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의 자살은 작품의 심장과도 같다. 섬세하고 정교한 감정표현,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을 가진 인물들의 대치와 언쟁 등 작품은 독자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젊은 나이의 순수함으로 시작한 사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이 화룡점정이 되어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파급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또 한가지의 이유는 고귀하고 우하한 성품만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사랑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해지고, 또 사랑이 얼마나 파괴적인 힘으로 성장해 명량했던 청년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그 과정중에서 우아하고 총명해보이는 인물의 내면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소심한지를 비춰주며, 사랑 앞에서 체면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베르테르로부터 공감을 구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 추측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사랑과 연애의 감정이 일반적이게 느껴지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의 사랑이란 무척 고귀한 감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오만과 편견」만 보더라도 귀족들은 사랑 앞에서 체면을 굽히지 않고 우아하게 즐긴다. 마치 집 안에서도 빳빳한 흰 와이셔츠를 입듯.
베르테르는 초반부에 매우 명량하고 지적이며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젊은이로 등장하지만 알베르트를 만난 이후로 급격한 우울감에 빠져 지내게 된다. 이에 그가 명량했던 시절 우울과 자살에 대해 늘어놓은 연설을 가벼히 여길수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의 행복마저 앗아가버리는 우울에 빠져 지내는 것은 인간의 태만이며 인간의 기쁨·번뇌·고통의 한계에 이르러 선택하는 자살은 비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우울이 태만한 자의 것이라 말했지만 그는 우울감에 빠져 오랜 시간을 보냈고 끝내 한계-나는 그의 순수한 상상력과 번뇌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보았다-에 이르러 자살했다. 이런 면에서 뛰어나보였던 베르테르도 생각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모순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중반에 그와 분신과도 같은 인물 둘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로테의 하인이었다가 그녀를 흠모해 쫓겨난 (그는 미쳐버렸다) 하인과 섬기던 부인을 너무나도 사랑해 겁탈하려다 실패하여 결국 아무도 그녀를 사랑할 수 없도록 죽여버린 하인이다. 이 둘을 포함하여 셋(베르테르까지)은 너무나도 순수한 사랑과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연약한 그들의 마음이 과격해진 사랑을 견디지 못해 각자를 파멸로 이끌었다. 모든 시작은 사랑이었고 겁탈과 살인, 자살처럼 반인류적 행위로 이끌었다. 사랑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대부분의 사랑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만 간혹 저런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이 있는걸 보면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소설의 루머이자 몇 가지 사실을 밝히자면,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 열병에 빠지는 유행에 휩쓸린 것은 맞지만 죽음까지 유행하지는 않았다. 또한 이 모든 이야기는 괴테와 그의 동료 예루잘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60p
그것(우울)을 병으로 간주하고 고칠 방책은 없는지 물어보자는 겁니다…우울증이란 태만과 비슷한 겁니다. 아니, 태만의 일종이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천성적으로 그런 기질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단 한번만이라도 스스로를 다잡을 힘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베르테르-
84p
당신은 모든걸 과장하는군요…자살은 나약함의 표현에 지나지 않아요. 어쩌면 고통스러운 삶을 꿋꿋이 견뎌내는 것보다 죽는 편이 훨씬 쉬울지도 모르죠…
-알베르트-
85p
한계가 있어요. 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사람이 약한가,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고통의 한도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게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그리고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 역시 말이 안된다고 봐요.
-베르테르-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었다면 가장 생각해볼만한 주제가 바로 '우울'과 '자살'이 아닐까. 베르테르와 알베르트가 열띤 토론을 나누었던 것처럼.
1. 우울감은 인간의 태만 중 일종이라고 바라보아야 할까? 베르테르는 스스로 다잡을 힘으로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강력한 의지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생활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함은 분명하다. 여기서 핵심은 스스로의 의지로 우울감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적인 측면과 얼마나 강한 힘(정신, 의지)을 가지고 있느냐는 측면에서는 태만의 일종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그러나 납득이 가는 수준 이상의 이상(理想)이 작용했을 때 이야기고,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영향 혹은 기한이 없는 부정적인 상황 등 불특정한 전제를 감안한다면 태만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울감이 지속되는데에는 개인의 태만한 태도가 영향을 줄 수 있지, 우울이 태만에 종속되는 표현은 아니다.
2. 자살, 사회에서 자살을 나약한 선택이라고 바라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베르테르가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알베르트의 말에도 납득이 간다.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에 이른다고 하지만 파멸은 하나의 선택일 뿐 그것을 극복해낸 사람들은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위인들의 자서전에서 볼 수 있듯.
핵심은 알베르트와 베르테르가 생각하는 고통의 정도가 다르다는데 있다고 판단하며 생각을 맺고싶다. 강철은 더 뜨거운 불에서 단련된다. 달구고 두드리며 더 강력한 철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알베르트). 하지만 크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버리면 철이 녹아 단단해지키는 커녕 액체가 되어버린다(베르테르).
226p
이 소설의 1부에 나오는 베르테르는 괴테이고, 2부에 나오는 베르테르는 예루잘렘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훗날 「시와 진실」에서 괴테는 이 작품을 쓰는 데 겨우 사 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그 기간동안 몽유병과 같은 무의식적인 확신을 가지고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227p
괴테의 소설이 자살 유행을 가져왔다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1778년 1월 바이마르에서 어떤 여인이 괴테의 집 정원 뒤를 흐르는 일름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었다. 크리스티네 폰 라스베르크라는 이 여인은 연인에게 버림받자 주머니속의 「베르테르」 한 권을 지닌 채 강물에 뛰어들었다. 만약 괴테의 소설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자살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28p
연약한 마음과 과격한 상상력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일반적인 자살을 옹호하는 글을 쓰는것과는 거리가 멀다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
229p
베르테르의 고상해 보이는 이유들 때문에 세상을 버리는 것 보다는 팬케이트 냄새 때문에 세상에 남을 것을 택하는 쪽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리히텐베르크-
235p
독일에서는 베르테르 열병이 너무 심해서 이미 1775년 3월 6일에 괴테가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이제는 불쌍한 베르테르가 무덤에서 끌려나와 조각조각 해부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진저리가 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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