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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 고도의 문명화된 사회와 원시적 본능간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서평 2022. 8. 28. 20:49
1. 줄거리
미래전쟁에서 원자탄의 세례를 받게 된 영국으로부터 6~12세의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된다. 소라를 발견한 랠프와 새끼돼지를 중심으로 봉화를 올려 구조요청을 보내거나, 소라를 이용해 회의를 소집하는 등 그들은 합리적·민주적·도덕적·이상적으로 구조를 기다리는 듯 싶었지만 성가대원의 대장 잭 메리듀와 이제는 사냥부대가 되어버린 성가대원들은 사냥에 빠져 봉화의 필요성을 서서히 잊게 된다. 정체불명의 괴물의 등장과 함께–실은 낙하산에 묶인 부패하던 조종사였던-랠프와 잭은 서로 대립하게 되고, 급기야 사이면·새끼돼지를 죽인 야만인 패거리들이 랠프마저 사로잡고자 뒤쫓던 중 해군에게 구출된다.
2. 인물과 상징들
랠프는 이성과 상식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상징이다. 그는 소라로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등 막연하나마 소라를 축으로 민주적 질서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또한 랠프 패거리가 그토록 애먹었던 봉화는 단지 구줄·구원의 상징을 넘어서 그들에게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문명화된 사회에 대한 미련과 갈망 혹은 그들이 갖춘 사회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봉화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떠난 잭 패거리(성가대)는(211p) 이내 “야만인”으로 불리게 된다. 잭은 권력 지향적인 인간으로 가면과 의식을 동원하여 수치감과 죄의식 으로부터 인간들을 해방시켜 사회/정치적 안정을 추구하고, 그를 위해서는 잔혹한 행동 서슴치 않게 된다. 그는 야만적 독재자이자 파괴적 종교의 사제가 된 셈이다.
“자신의 모습에 놀란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낯선 사람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그는 물을 내버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신명나게 웃어댔다. 웅덩이 곁에서 건장한 육체가 마스크를 쓰고있는 그의 모습에는 남의 눈길을 끌고 그들을 겁나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는 덩실덩실 춤추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피에 굶주린 포효로 변했다. 그는 빌 쪽으로 뛰어갔다. 이제 마스크는 혼자 움직이는 독립된 실체였다. 그 마스크 뒤에 숨은 잭은 수치심과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었다.
(92p 인간의 수치심, 죄의식을 넘어선 잭)각자에게는 그들의 이념을 대변하는 참모들 또한 있었는데 랠프에게는 사고력을(어른의 지혜를 신봉하고, 어른의 행동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우선시하여,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매우 가치 높게 평가되었겠지만 이 섬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새끼돼지가 있었고. 잭에게는 이미 무력한 새끼돼지를 처참하게 처형시킨 로저가 있었다. 뚜렷하게 구분된 두 파 이외에도 자신만의 신념이 있거나(사이먼)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소시민적 성격을 가지는 제 3자들도 있었다. 각 인물들의 성격과 사상이 변질되고, 자리잡아가면서 그들간의 미묘하면서도 때로는 대범한 마찰과 충돌은 단순히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의 원초적 행동을 넘어 인간 사회의 세력들간 갈등과 폭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그는 주저했다. ”아마 짐승은 있을거야“…”내 말은…짐승은 우리들 자신뿐일 거라는 뜻이야“
(131p 고독하며 명상적, 진실을 알고있는 사이먼)3. 파리대왕
랠프와 잭의 대립부터 결국 랠프를 사로잡기 위해 질주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그 안에서 문명 사회가 원초적 권위주의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끝으로, 그렇다면 왜 제목이 뜬금없이 ‘파리대왕’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변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인도라는 비문명화된 환경적 배경이 아닌 인간 내면의 악이라는 것이다. 그 악이 양지로 드러나 부패의 냄새를 풍기자 저마다 내면 깊이 숨겨둔 악에 동요된 파리들이 모여들어 결국 합리적이고 문명적 사회를 무너트림을 생각해보게 된다.
4. 벗어날수 없는 굴레, 결국은 회귀하기 마련
이 책을 읽고나서 "3차 세계대전이 어떤 무기로 치러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4차 세계대전은 아마도 몽둥이와 돌을 가지고 싸우게 될 것이다." 라는 아인슈타인의 말과, [빠삐용]등 여러 작품에서 인간은 결국 원초적 폭력성으로부터 초월할 수 없는 존재임을 또는 고도의 문명화된 사회와 원시적 본능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반복 암시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님이 떠올랐다.
인간이 이렇게 모든 생물의 정점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유지할 수 있음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 덕이다. 인간 자체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생물이 아니라. 세계간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문명화된 세계에서 살아오던 아이들은 단숨에 원시 문명의 형태를 띄었다. 단순히 가스불이나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등 생활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살인을 서슴치 않는 등 도덕이라 부르는 것들의 형태 역시 금세 잃었다.
여기서 핵심은 랄프와 잭의 대립이다. 랄프와 새끼돼지는 그래도 문명의 형태를 잃지 않고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잭 패거리를 비판하고 그들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지만 점차 전체 아이들은 잭 패거리에 속했다. 부패의 냄새를 따라 파리가 꼬이기 시작하듯.
잭 패거리로 아이들이 넘어감은 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 등 갖은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만일 과반수가 랄프 패거리에서 소신을 지켰더라면 잭 패거리에 비해 더 강력한 힘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문명 또한 지킬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더 어울리는 양식은 잭 패거리에 가까운 폭력과 제사 등 원시적 방법들이다.
선악설을 주장하고 싶은건 아니다. 원시적인 방법이 악하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으니까. 핵심은 인간이 문명화된 모습을 지킬 수 있음은 인간에서 인간으로 유지되는 문명화된 사회가 있기 때문이며, 개인은 원시적인 야생동물에 가깝다는 것이다.
5. 한편으로는...
한편으로는 섬이 아니라 아스팔트 바닥에 시멘트로 잘 지어진 건물들이 지어진 환경에 아이들이 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본적으로 악의 성질을 띄고 있고, 잠재된 악의 성질이 흘러나와 서로에게 동화된 것보다는 야생의 환경에 적응해나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었다. 자연선택의 과정처럼.
90p
“그는 그 안으로는 감히 돌을 던지지 못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옛 생활의 금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덜퍼덕 앉아 있는 어린이의 주위에는 부모와 학교와 경찰과 법률의 보호가 있엇다. 로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이제는 폐허가 된 어떤 문명이 팔매질하는 로저의 팔을 저지했던 것이다”
-문명의 제약, 수치, 두려움에 묶인 로저-134p
이해가 가능하고 합법적인 세계는 이제 허물어지고 있었다. 전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가 있었다. 이제는-그리고 배마저 떠나고 만 것이다”173p
“진짜 멧돼지가 필요해” 아직껏 엉덩이를 어루만지면서 로버트가 말했다. “진짜로 죽여봐야 되니까”. “꼬마를 써먹어”하고 잭이 말하자 모두들 웃었다.
-잭에게 남은 일말의 인간성조차 사라졌음을 알게됨-202p
“우리가 멧돼지를 잡거든 그 짐승에게도 얼마쯤 주기로 하자, 그러면 그 짐승도 우리를 성가시게 굴지 않을 거다”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려는 종교적 사제가 된 잭-211p
“짐승이 무서운 게 아냐. 물론 짐승이 무섭기도 해 그러나 정작 무서운 것은 아무도 봉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야. 물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밧줄을 던져주는 일이나. 아플 때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죽을 테니 이 약을 먹으라고 하는 의사의 말은 모두들 이해할 텐데- 그렇지? 내가 한 이해가 되니?”
-봉화의 의미를 잊어가는 아이들을 지적하는 새끼돼지-264p
“얼굴을 감추는 색칠이 사람에게 얼마나 야만성을 가져다주는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우린 얼굴에 색칠을 해서는 안 돼.” 하고 랠프는 말했다. “우린 야만인이 아니니까 말이야”
-가면과 야만성을 지각한 랄프 패거리-'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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