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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의 유럽여행] 퓌센 여행 | 한겨울의 노이슈반스타인 성
    일상 2023. 2. 2. 12:05

    - 퓌센, 꿈만 같은 마을 -


    0. 홀로 나선 길

    호연이가 아파서 결국 혼자 길을 나서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호연이가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에(거의 98% 정도) 내가 소통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는데, 혼자인 오늘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슈퍼에서도 간단한 회화를 시도해보지 않은 내가 점심까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유레일 패스로 적당한 기차를 알아보고 역으로 향하는데 트램이 뮌헨 중앙역에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간발의 차로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시작이 안 좋았다. 가까스로 역에 도착했지만 기차는 떠났고 어쩔 수 없이 추운 날씨에 역에서 한 시간을 서서 기다렸다.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놓치고 찍은 사진. 그래도 유레일패스가 있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퓌센에 도착했다. 오는 길 내내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거나 동영상을 보며 왔는데 막상 내리고나서 보니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대강적인 위치만 알 뿐 입장 티켓이라던지 교통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퓌센은 호연이와 나의 사각지대였다. 나도 그랬고 지도 한번 제대로 설펴보지 않고 이런 볼거리가 있더라~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기차를 내리고 그제야 티켓과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퓌센역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풍경이다. 정말 겨울의 왕국에 온 듯한 느낌.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아서 처음으로 센드위치를 시켜봤다. 사실 어려울 건 하나도 없었고, 시키고 난 후에 독일 사람들처럼 샌드위치를 들고 길거리에 서서 먹어봤다. 간편하고, 배는 차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그 분위기가 참 좋았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티켓을 알아보니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개인 입장이 불가능하고 오직 현지에서 운영하는 투어(사람 혹은 오디오)만 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예약은 1월 중순까지 다 차있는 상태였다. 결론은 못 들어간다는 것. 두 번째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 내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마리엔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성과 주변 풍경의 전경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안 좋은 상황을 맞이했다. 눈이 온 날에는 마리엔 다리를 막아버린다는 것이었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발목높이로 눈이 두둑이 쌓인 오늘은 분명히 문을 닫고도 남을 것 같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터넷을 뒤지는 것뿐이었는데, 뒤지다 보니 마리엔다리 뒤쪽으로 울타리를 넘어서 가면 훨씬 더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 말 하나만을 믿고 먼 길을 다시 한번 나섰다.

    실제로 도착해서 보니 마리엔 다리는 통제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기차를 내렸을 때 이미 두 대가 한꺼번에 나간 상태였다.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라고 하니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는 길에 기차 창 밖을 내다봤는데 눈이 쌓인 나무와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무 역에서라도 내려 잠시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왕 버스도 안 오는 거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걸어서 가는 길. 퓌센 간판이 보여 찍어본 사진.

     

    현지인 혹은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람 한 두명을 제외하고 걸어서 노이슈반스타인 성으로 향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찻길 바로 옆을 걸어갈 때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한국인의 속성인가 싶기도 한)을 느끼기도 했지만, 눈을 주위로 돌리면 금세 풍경에 집중이 뺏겨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로 전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나오는 겨울 숲이 실제로 있다면, 그것보다 조금 더 멋진 곳이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으로 가는 길

     

    한 가지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알렝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오늘날 미디어가 발달하며 세상 어느 곳에든 무료로 당장 여행을 갈 수 있지만 그전에는 엄청난 수고를 들여 그곳을 여행했다는 것이다. 그 수고를 겪고 마침내 바라던 곳을 마주쳤을 때의 감동, 깨달음, 전율 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었다. 그 글을 떠올리며 힘을 얻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노이슈반 스타인 성으로 가는 길.

     

     

     

    1. 걸어서 가는 길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해서 지도를 보면 내가 여기쯤 왔겠지 싶은 곳의 반도 못 갔다. 생각보다 거리는 멀었지만 그래도 여태 걸었던 것이 있어서 다리는 아프지 않았다. 노래를 듣지도 않았고 그냥 주위 풍경에 심취하고는 걸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한번 같이 와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정말 한참을 걸었다. 이쯤 되면 거의 다 왔을텐데 하는 생각이 열 번쯤 들 때 즈음 저 멀리 눈 쌓인 나무들 틈 사이로 성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 성은 노이슈반스타인 성보다 인기가 덜한 노란색 호엔슈반가우 성이었다. 그래도 길 정중앙에, 눈이 가득 쌓인 흰 나무들 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이질적인 노란색 성은 한동안 내 발을 묶을 만큼 강력한 매력이 있었다. 조금밖에 보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을 보고 싶었다. 가까이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나무에 가려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호엔슈반가우 성

    또 한참을 걸으니 이번에는 드디어 흰색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보였다. 아주 조금 뿐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는 말이 납득 갈 정도였다. 흰 눈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꿈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긴 길을, 깊은 눈과 미끄러운 바닥을 딛고 왔기에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불타올랐다. 과장이 아니라 성을 가까이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파른 눈길을 달려가기도 했다. 눈이 두텁게 쌓일 정도로, 옷을 네 겹이나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는데 어느새 땀이 뻘뻘 나서 목도리를 풀어야 했다.

     

    길을 잘못 틀어 한참을 돌아가야 했기도 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사실 길을 잘못 들어간 덕에 의도치 않게 구글 지도에서 인정한 전망대에도 들를 수 있었고 퓌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 또한 정말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맑은 공기와 산 중턱에 쌓인 흰 구름, 그리고 눈이 덮어버린 세상은 마법에 걸린 듯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퓌센. 실제로 눈으로 보면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장대한 풍경이다.

     

    도착한 마리엔 다리는 역시 닫혀있었다. 예상된 일이었기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다리 아래 수백미터 아래로 에메랄드 빛 물이 흐른다는데 그걸 못 봐서 아쉬웠다. 얼른 지름길을 찾았는데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앞에서는 사람 한 두 명이 어물쩍거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이 위험해 보였다. 안 그래도 산이라 상당히 미끄러웠고 그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식의 표지판도 있었다. 군대에서 쓰는 윤영철조망도 처져 있었지만 무색하게도 사람들이 이미 많이 지나가 길은 다져져 있었다.

    오르는 길 중간에 보인 노이슈반스타인 성.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 눈치보랴 걱정하랴 돌아갔겠지만, 무릅쓰고 나는 그 길에 들어섰다. 앞사람들처럼 어물쩡거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과 달리 1시간을 넘게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땀을 뻘뻘 흘려 패딩을 열고 있는 상태로, 손과 발을 다 써 기어가다시피 언덕을 올라서니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에 펼쳐졌다.

     

    독일에 와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웅장함이라던지 감동을 담아낼 수 없다. 차가운 공기와 바람, 분위기를 담지 못하는 것도 물론이다. 셔터를 수십 번 눌렀지만 그걸로도 부족하고, 동영상으로도 부족했다.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다. 글을 초월하는 아름다움. 오히려 조금 덜 아름다웠으면 어찌어찌 설명이라도 했겠지만 그것을 한참 초월했기 때문에 글로도 담아낼 수 없다.

     

    홀린 듯,사랑에 빠진 듯 바라봤다. 언덕 아래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눈이 조화를 이루었다. 바로 앞 절벽과 나를 구분 짓는 작은 눈 언덕과 아래에서 내려온 눈 쌓인 나뭇가지가 액자가 되어주었다. 그 사이로 멀리 멀 리까지 눈으로 뒤덮인 산이 배경이 되어줬다. 그 중앙에는 백옥 같은 성이 사뿐히 올라서있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성이었다. 눈이 그 분위기를 한층 더해줬다.

    노이슈반스타인 성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더니, 디즈니랜드 성의 모델이라더니 사실 그 이상인 것 같다. 독일에서 보낸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뭔가를 보러 간다는 것 이상으로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걸어서 성까지 찾아갔던 것이 한몫했다.

     

     

     

    2. 타지에서 만난 외국인

    그곳에서 어떤 분이 나한테 사진을 요청해서 찍어줬다. 그분이 사진이 필요하냐 물어봤고 덕분에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위태로운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모자가 윤영 철조망에 걸릴 듯 하자 그분이 잡아주셨다. 감사함을 표현하고 앞으로 나오니 그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중국에서 오신 분이고, 대학을 4년 보내어 지금은 자동차 공장 엔지니어로 인턴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혼자서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고, 때문에 휴일이 적은 중국보다(그분 말로는 연간 일주일정도에 그친다고) 거의 한 달 휴가를 주는 독일에서 앞으로 지내고 싶다고 하셨다.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지만 핸드폰 사진을 확대하면 픽셀이 깨지는 게 싫어 두 달 전에 카메라를 사셨다고 했다. 그 카메라로 나도 열심히 찍어주셨다.

     

    내가 영어를 잘 못했는데, 그분은 최선을 다해 들어주셨고 말해주셨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면 그분은 "내가 잘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이걸 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이런 식으로 답했고, 그분이 한참 말하다가도 멈칫하셔서는 쉬운 단어를 써가며 "아참, 내가 말한 건~라는 뜻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분의 권유로 근처 호수까지 같이 걸어갔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기차까지 함께 찾아갔다. 거의 네 시간 정도 같이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호연이랑 떨어진 당일에 이런 일이 생길까. 하지만 덕분에 영어에 자신감도 붙고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기억이었다. 너무 고마운데 말로 전할 수 없어 메일을 알려달라고 했고 따로 연락을 했다.

     

    나중에 연락을 받아보니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 사진을 종종 찍어주곤 한다고 한다. 그리고 혼자 여행하길 좋아하면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좋아해 여러 사람과 대화하기를 즐긴다고. 영어 못하는 건 괜찮단다. 자기도 처음에는 많이 못했는데 억지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말을 섞다 보니 잘하게 되었다고 말해줬다. 헤이지기 직전 나에게 '제가 불편하지는 않았죠?'라고 물었던 게 인상 깊었다.

    뮌헨으로 돌아오며, 창 밖으로 보인 풍경. 아름다운 노을덕분에 하루를 잘 마무리한다.

     

    하여튼 감사하면서도 좋은 인연이었다. 다만 4시간 동안 영어 듣기 평가 모드로 있어서 굉장히 지친 하루였다. 내일은 드디어 이탈리아로 간다.

     

     

    3. 월드컵 결승전

    오늘이 월드컵 결승전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숙소로 일찍 돌아와 호연이와 펍에 가서 결승전을 보려고 했는데 내가 늦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뮌헨 중앙역에 내려서 호텔 앞을 지나가는데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호텔 로비에 틀어져있는 축구를 보려고 모여있었다.

     

    다들 알겠지만 결승전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고, 집에 딱 도착하는 순간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역에서 같이 먹으려고 사온 프레첼과 함께 승부차기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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