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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명관 | 고래] 외설과 예술 사이,
    서평 2024. 4. 14. 19:50

     

    고래_천명관 장편소설
     
    읽던 책이 지루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아서 찾게 된 책이었다. 어느 한 유튜버로부터 아주 자극적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뚜렷할 정도라는 소개는 지루함에 지친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 요새 핸드폰을 손에서 잘 놓지 못했는데, 유튜브 숏츠가 나오고 난 후에는 더 그랬다. 짧고 강렬한 영상들은 모니터 밖 세상을 마치 물에 씻은 한지를 씹는 것처럼 지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은 영상들보다도 [고래]는 더 강렬했다. 남녀 간의 만남과 헤어짐, 한 사람의 흥망성쇠, 한 마을을 휘어잡았던 영웅의 몰락 등. 하루 한 시간 씩 열흘에 걸쳐 읽을 거라 계획했던 것과 달리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틀 만에 해치울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이틀 만에 600페이지를 읽었다는 기록적인 집중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소재가 자극적이었다는 이유만 있지 않다. 그랬다면 싸구려 불량품과 다를 바가 없었을 테다. 세밀하게 쓰인 각 사건들에는 생동감이 충만하여 마치 내가 현장에 들어가 있는 듯하며, 각 사건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관계를 맺으며 나아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대와 관점도 빠르게 전환되면서 잠시라도 집중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한다.

    무엇보다 필자의 이야기 솜씨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는데. 가령 복선이 되는 사건이나 인물 혹은 예언 등에 끝말을 덧붙이는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뒤, 그녀(금복)는 단 한 번의 착오로 인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인물을 한 명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의 대가였다."라는 문장을 붙인 적이 있다. 상처를 입힐 인물은 누구이며 어떻게 상처를 입고 금복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지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되고 여러 인물들을 추긍해보기도 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마냥 자극적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히는 책이라 하니 불량식품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각 인물과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뚜렷하게 있고 그에 대해 분명히 고민해 보게 되는 지점이 있다. 가령 춘희가 철가면에 의해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맡고 있을 때 약장수는 도시에서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다' 따위와 같은 대화를 하고 있으니 같은 인간 사이에서 동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으니 자연스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장수와 춘희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이상적인가? 꼭 그렇지는 않고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자리가 부족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보겠다.

    뿐만 아니라 칼자국, 금복, 춘희, 탐사대로 넘어온 은색 라이터나 코끼리, 국밥집 할머니의 저주 등 각 객체가 문학적으로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도 책을 더 깊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단한 철학적 해석들을 덧붙이는(예컨대 뒤샹의 소변기에서 갖은 철학을 발견해내는 것처럼) 오류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치 있는 작품이다. 오히려 한 상황이나 객체로 하여금 무언가를 시사한 데에서 작가의 치밀한 의도가 보인다. 가령 춘희의 감방 생활에서 잊혀질 법한 수련을 재등장시키며 자연스럽게 약장수로 이야기를 전환시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자연스레 감탄이 흘러나오게 된다.

    ​ 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적어가며 읽으려 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당장 뒷이야기가 지독하게 궁금했던 나에게는 그런 인내심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장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한 법칙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반복해서 쓰인다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꼭 희화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상황을 명료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기도 한다. 동시에 문장을 매듭짓는 역할도 하니 마치 탕약의 감초같이 제 존재감을 뚜렷이 전하며 역할도 톡톡히 하는 녀석이라 할 수 있겠다.

    ​ 그렇다면 좋은 책인가? 그렇다고는 못하겠다. 작품의 특징이지만 지하철에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읽는 인터넷 삼류 소설처럼(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요즈음 자극적인 제목들로 추측해 보건대) 지나치게 자극적인 상황들이 남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종이에 쓰였기 때문에 문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인터넷에서 읽혔더라면 이런 저급한 소설도 있냐며 기피해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앞 문단을 읽었다면 꼭 이 문단을 읽어주길 바란다.)

    자극적인 소재에 대해서 지적했지만 작품의 핵심은 그곳에 있지 않다. 자극적인 소재만 기억에 남는다면 저급한 것은 책이 아니라 독자일지도 모른다. 자극적인 사건, 상황, 문장, 단어에만 빠져들지 말고 그것들이 맺는 관계를 살펴야 해당 작품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입체감, 생동감, 상황 묘사, 감정 표현, 인물들 간의 관계, 사건 간 연결성 등으로부터 글쓴이의 뛰어난 글 솜씨와 사고를 확인할 수 있고. 그것들의 점철이 뚜렷한 시사점을 비추는 것을 확인할 때 타고난 계략가이자 이야기꾼임을 납득할 수밖에 없다.

    ​ 작품은 좋지만 감히 이름을 알리며 추천하기에는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표지를 들추는 순간 다른 할 일들을 전부 미뤄야 할 정도로 강렬한 몰입감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독후감을 두 번에 나누어 기록한다. 독서만큼이나 작품을 파헤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기 위함이다.

    따라서 첫 번째 독후감은 해설이나 요약한 글조차 참고하지 않고 작성한다. 순전히 내 생각으로만 작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평론가의 전체 해설을 읽어보거나 부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블로그를 참고한 후에 작성한다(가끔 첫 발걸음조차 떼기 어려운 책들의 경우는 해설과 작품을 함께 읽기도 한다).​ 내용이 비슷할 때가 있는가 하면 아예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는데 [고래]의 경우는 지극히 후자에 해당되었다.

    앞선 나의 서평에서는 작품의 선정성이나 표현력에 집중했었다. 작품의 내면 곧 시사하는 바를 살피지 못하고 표면적인 이야기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해설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나와 전혀 다르게 작품의 선정성이나 사건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각 사건과 인물의 내면에 대해 풀이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해설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는 해당 작품은 소설에서만 마치는 것이 아니라 표지에서 표지까지 곧 해설까지 읽어야 비로소 [고래]를 읽었다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며, 해설을 대한 후에 '좋은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라는 나의 평가가 나의 무식을 드러낸 것 같아 귓불이 뜨거워질 정도로 작품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한 법칙이었다'라는 문구가 반복되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으나, 금복과 국밥집 할머니에게는 적용되지 못했다. 해설자는 해당 문구와 인물 간의 관계를 살펴 인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했고, 인물의 행동과 사건의 개연성에 타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등등 더 소개하는 것은 내 생각이라기보다 해설을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므로 이쯤 하고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라.

    두 번째는 내가 얼마나 수준 미달의 독자인지 성찰할 수 있었음이다. 외설과 문학을 구분하는 것은 작가가 아닌 독자라고 했음은 나에 대한 소개였다. 해설자는 선정성에 대해서 지적하기보다 그 이면에 관심을 두었다.

    덧붙여서 해당 작품은 놀랍게도 2004년 쓰였다고 한다. 자그마치 20년 전 당시의 대중들이 작품을 읽었을 때에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어떠했든 분명히 20년 동안 점차 먹고살기 좋아진 대한민국은 젠더 문제나 성(性), 물질에 대한 철학 등 이념에 대한 관심을 더해갔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기도 하다. 04년도의 대중이 선정성에 대해 지적했다 하더라도 그 논리나 온도가 달랐을 것 같다.

    하여튼 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말 그대로 나는 이틀 동안 책 속에서 살았다. 과일로 표현하자면 두리안 같은데 무시무시한 외관과 폭력적인 향기와 달리 그 맛은 과일의 왕이라 할 정도니, 멀리서 지켜만 본 사람은 무시무시하고 구역질 나는 향기가 난다 할 테고 구린 냄새를 참아가며 속살을 맛본 사람은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속살은 본인이 취하는 것이니 이상한 과일을 선뜻 건네줄 수는 없기에 여전히 지인들에게 권장은 못하겠다만 독서에 흥미를 가지고 싶은 책에게는 짓궂은 장난을 치듯 손에 쥐여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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